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Oct 04. 2020

5개월 차에 '일다운 일'을 맡았다

페인트칠, 간단한 게 아니네요.

*개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입니다.*


회의 시간에 찾아온 기회.

건축 현장에서도 회의를 진행한다. 현장기사였던 내가 참여하는 회의는 두 가지 회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공정회의와 주 2~3회 진행하던 사무실 회의다. 공정회의는 시공에 참여하는 모든 공정별 대표들이 참여하는 회의였고, 사무실 회의는 회사 소속의 직원들이 참여하는 회의였다.

그 날은 사무실 회의를 진행하던 때였다. 현장사무실에 모여 각자 하는 업무를 보고하고 공정을 조율하고 도면을 보며 주요 체크리스트를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주요 안건은 장애인 편의시설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건물 입구로 향하는 진입로에는 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턱이 있다면 턱을 없애거나 경사로를 새로 설치하여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통행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진입로에 여닫이문이 경사로 끝부분에 설치되어 있다면 열리는 공간을 제외하고서 1/12 경사의 진입로를 확보해야 했다.

 

: “잘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문 열리는 공간을 제외하고 1/12를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상태는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1/12이기 때문에 재시공(데나우시)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소장: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맞네. (웃으며) 큰 일 날 뻔했네. 그러면 이참에 현우가 장애인 편의시설이랑 지하주차장 도색 작업 맡아서 진행해볼래?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파일은 보내줄 테니까 참고해서 진행하면 되고, 도장 작업은 장애인 마크 관련한 것만 전달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현장 5개월 차, ‘일다운 일’이 생겼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일감이 늘어난다.


질문이 일감이 되었다. 청소와 자재관리 업무들이 중요하지 않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상상했던 일과는 달라서 자주 괴리감을 느꼈었고 하루라도 빨리 배워 선배들처럼 시공관리 업무를 맡고 싶었던 차였다. 소장님이 일을 주셔서 무척 기뻤고 감사했다. 왜냐하면 5개월 내내 도면과 줄자보다는 빗자루를 더 많이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줄자와 도면을 들고서 ‘일다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자 설레었고 기대됐다. 그렇게 첫 ‘시공관리’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지하주차장 도장 작업을 진행하며 현장 시공 관리 업무가 어떤 업무인지 소개할 것이다. 장애인 편의시설 업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소개했다.)




페인트칠, 간단한 게 아니네요...

시공관리 업무를 공사 전, 중, 후로 나눈다면 현장관리인은 대부분 시간을 공사 전에 할애한다. 비율을 나누면 공사 전 70, 공사 중 20, 공사 후 10 정도다.


모든 시공관리 업무의 첫 번째 단계는 해당 공사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다. 면적(m2 단위, 1제곱미터는 여전히 현장에서 1헤베라 부른다.)과 층수 정보는 필수이고 자재 조달 방법과 같은 특이사항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지게차 혹은 크레인을 사용 여부, 인력으로 직접 운반 여부, 자재 적재 위치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맡았던 지하주차장 공사 특이사항은 장애인 주차구역과 임산부 주차구역에 관한 것이었다. 주차구역 색깔 그리고 주차선 두께와 색깔들을 도면에 표기하고 메모해두었다. 문제는 소장이든 선배든 시간을 할애하여 지하주차장 도장 공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바쁜 사람들에게 가르쳐달라고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정보를 얻고 그래도 모르는 부분은 눈치를 봐가며 자투리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질문했다.


전화기 불났던 어느 날 통화목록


두 번째 단계는 통화와 메일 발송이다. 통화의 가장 큰 목적은 일정 협의다. 언제, 몇 명이 현장에서 들어와서 며칠 동안 진행할 것인지 협의한다. 원청에서도 다른 작업과 중복되지 않아야 하고 하도급 업체에서도 다른 현장과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정 조율을 잘해야 공기가 단축되고 결국엔 이윤이 남는다. 현장관리인은 일정 협의를 잘해야 한다. 지하주차장 도장 공사 당시에는 공기에 쫓기는 때여서 인력을 더 충원해서라도 일찍 지하주차장 도장 공사를 마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 사정은 글 후반부에 기록하였다.)

일정 협의를 하며 공사 내용도 전달한다. 공사구역이 넓고 복잡한 경우에는 도면을 메일로 전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휴대폰 사진으로 전달하여 행정 업무를 최소화한다. 지하주차장 도장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도면을 첨부하여 측정한 면적 적산 값을 메일로 전달했다. 통화하면서 다시 한번 특이사항을 크로스 체크한다.


업체 담당자와 통화하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배우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분야만큼은 하도급 업체 담당자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위 두 단계가 마무리되면 현장 정리 작업을 한다. 지하주차장 도장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리를 해둬야 한다. 당시 현장에서는 지하주차장을 공종별 쉼터와 공구함 그리고 주차장, 각종 자재 적재함으로 사용하였다. 자재들을 이동할 공간을 마련해야 했고 작업자들이 쉼터 물품들을 정리하도록 지시하고 관리해야 했다. 70%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공 단계에 돌입한다. 지하주차장 바닥 도장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바탕 면 처리(기계 사용)
2. 프라이머칠(접착제 역할)
3. 양생
4. 퍼티 작업
5. 1차 도색
6. 양생
7. 2차 도색


일단 신축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바탕처리 작업을 한다. 기존 바닥 페인트들을 제거하고 도색이 잘되도록 면처리하는 작업이다. 기계로 작업하기 때문에 금방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도장은 양생이라는 시간을 필히 가져야 하기 때문에 연속해서 작업할 수 없다. 하루 색을 칠하면 반드시 그다음 날은 양생을 해야 한다. 무작정 인력과 기계를 투입한다고 해서 공기를 단축할 수 없었다. 가용할 수 있는 기계 대수에도 제한이 있고 투입할 수 있는 현장 인력에도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도급업체들은 팀 단위로 움직인다.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팀원이 아닌 다른 기술자들과 협업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시공 업무가 기술적 섬세함과 팀워크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보수성을 띤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장관리인은 시공이 시작되면 해당 공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지 감독한다. 혹시나 급하게 필요한 자재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처리해준다. 오히려 시공 전단 계보다 덜 바쁘다. 2차 도색까지 마무리하면 도장 담당자와 함께 전 구역을 돌며 확인하며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확인하고 요청한다. 별 이상이 없다면 하나의 공정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용기가 기회를 만들었다.

도장 공사를 단순히 색칠하는 공사로 생각했었다. 수많은 공정 중에 덜 까다로운 공사였기 때문에 소장도 신입기사에게 일을 줬을 테다. 수월할 거라 생각했던 도장 공사도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보니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고 나니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었다. 보람을 느꼈고 뿌듯했다.


만약 회의 시간에 질문하지 않고 그냥 넘겼다면 나에게 이 기회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소장이 권위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기사의 말을 흘려듣거나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용기를 내어 질문했던 점이 나름 어필이 되었던 것 같다. 소장은 질문하는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일다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만약에라도 내 질문이 틀린 질문이었다면 한 번 혼나고 배우면 된다. 그게 두려워서 질문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이런 이런 기회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장애인 편의시설 업무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다음 


이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