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Apr 23. 2023

프로 산책러가 꼽은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

한강 이북편

어느새 서울에 산지도 7년째다. 걷는 걸 좋아해서 애인 혹은 친구와 함께 구석구석 누볐다. 가끔 시간이 나면 혼자서 보물찾기 하듯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흥미로운 장소나 사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래서 매일 다니는 장소도 다른 경로를 통해 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학원 연구실을 갈 때도 최단 경로로 가기보다는 일부러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보며 해찰을 즐겼다.


서울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자연환경과 고층 건축물이, 조선시대 한양의 옛것과 현대 서울의 새것이 공존한다. 해찰하기 참 좋은 도시다. 아직도 못 가본 동네가 많고 지금도 여전히 매일 새로운 서울을 발견한다. 


이번 글에서는 '프로 산책러'가 봄맞이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하고 걷기 좋은 도시에 관한 단상을 써보고자 한다. 서울을 한강 이북과 이남으로 구분했다. 이번 기사는 이북 편이다.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로권 산책로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선전도'다. 조선시대 한강 이북 지역의 산세와 청계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서울은 산이 품은 도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서울은 네 개의 외사산과 네 개의 내사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외에도 서울에는 높고 낮은 산이 분포되어 있다. 오르기 힘든 암산도 있고 남산, 낙산, 배봉산과 같이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오르기 험하지 않은 산들도 있다. 아직도 굽이굽이 산이 보존되어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산책로는 산과 연결된 종로권 산책로다. 서울은 산 덕분에 산책하기 좋은 도시인데 특히 종로는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낙산이 인접해 있다. 필자는 종로권 산책로를 '쇼트레카'라고 붙였다. 쇼핑과 트레킹 그리고 카페까지 여유롭게 걷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혜화역 인근 낙산공원 산책로는 유명한 산책로다. 연인이 데이트할 때 한 번쯤은 가보지 않았을까. 연극, 공연, 쇼핑, 먹거리 등 다양한 문화예술이 녹아 있는 지역이다.


부암동이 아름다운 이유는 '절제'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종로권 산책로는 세 군데다. 첫째, 북한산 형제봉 코스를 트레킹 하고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형제봉 두 개의 봉우리는 461m, 463m다. 쉬엄쉬엄 걸어도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간간히 등산이나 다른 운동을 하는 이라면 가볍게 트레킹 할 수 있는 코스다.


북한산 형제봉 정상에서의 풍경


형제봉에 오르면 평창동을 비롯해 종로구와 은평구 일대 그리고 성북구와 노원구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한 번은 정상에서 매주 이곳을 온다는 중년 부부를 만났는데 다른 북한산 등산로와는 다르게 사람이 적다는 알짜 정보를 주었다.


평창동으로 내려와 따릉이나 버스를 이동해 부암동으로 이동한다. 부암동은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네다. 필자가 서울에서 꼽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동네다. 미술관, 갤러리, 베이커리, 카페 등이 자리 잡고 있어서 한적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동네다. 기생충 촬영 이후에는 부쩍 인파가 몰리고 있어 오히려 좀 아쉬운 마음도 든다. 나를 비롯한 몇몇만 아는 동네가 만천하에 알려진 것 같달까.



부암동이 나름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던 까닭은 도시계획법상 개발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건축행위가 가능한 지역도 제1종전용주거지역과 제1종일반주거지역이라 고밀・고층 건축 행위가 불가능하다. 아마도 평창동이나 부암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는 이러한 도시계획 규제 때문일 테다.


만약 규제가 사라지고 고층 건축물이 이곳에 들어선다면 부암동과 평창동은 곧바로 그 매력을 잃어버릴 테다. 북한산과 북악산이라는 천혜의 풍경이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비움의 건축 보여준 '초소책방'



둘째, 부암동에서 서촌으로 향하는 산책로다. 가는 길에는 인왕산 더숲 초소책방이 있다. 인왕산 더숲 초소책방은 2018년 인왕산을 전면 개방함에 따라 서울시와 종로구가 초소로 이용되는 장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내부에는 카페, 책방, 베이커리가 있고 외부에는 비정기적으로 플리마켓을 열고 있다.


이 장소는 자연이 만든 초록색의 '아웃테리어'가 다했다고 평해도 이상하지 않다. 초록빨(?)을 제대로 받은 건축물이랄까. 초소책방은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녹아든 건축물이 상을 타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건축 행위를 통해 채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최소한의 건축 행위로 비움의 철학을 보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몸을 위한 다이어트 열풍은 식지 않는데 왜 우리 도시는 절제하지 못하는가.


초소책방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수성동계곡이 나오고, 서촌으로 갈 수 있다. 서촌이야 워낙 유명한 거리이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양말 가게나 소품샵이 있으니 구경도 하고 가볍게 쇼핑도 할 수 있다. 체력이 좋은 이들은 형제봉에서 서촌까지 연결해도 좋겠다. 필자는 두 코스를 하루 만에 걸어보았는데 총걸음수는 2만 1천 보였다.


천변을 따라 걷는 산책로


서울 한강 이북에는 선형 산책로가 많다. 도심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한적하게 평지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선형 산책로를 추천한다. 경의선 숲길이나 천변 산책로가 해당한다. 한강 이북 쪽에서는 여러 천이 있는데 천변에 선형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청계천, 성북천, 홍제천, 중랑천이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산책로는 청계천과 성북천에 조성된 산책로다. 도심 한가운데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때면 마음속 묵은 때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계절에 따라 운이 좋으면 오리 가족과 백로를 만날 수 있다. 집 근처인 성북천 산책로를 종종 걷곤 한다. 중간중간 운동 기구가 있어 철봉 운동을 하기도 하고, 낮에는 인근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기도 한다.


성북천 풍경


서울 도심 내 천변에 조성된 산책로가 좋은 이유는 언제든 휴식을 취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산책로마다 쉴 수 있는 의자나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경의선숲길은 조경이나 바닥 포장 면에서 비교적 최근 도시설계가 적용되어 자연미와 인공미가 동시에 느껴진다면, 청계천과 성북천은 시간의 때가 묻어 있는 자연미가 더 많이 느껴진다.


서울시에서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청계천은 성북천과 이어지고 성북천은 다시 한양도성길 낙산공원과 이어진다. 낙산공원 한양도성길은 동대문 DDP와 청계천에 이어 광화문까지 연결된다. 이중 하나의 포인트를 정해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걸어봐도 좋겠다.


모든 시민은 '산책할 권리'가 있다


성북천 풍경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이 있다. 걷기 좋은 도시를 주장하는 연구자나 활동가는 유토피아를 외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국내의 열악한 보행 환경 때문일 테고 자동차에 길들여진 문화 때문일 테다. 서울 한강 이북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걷기 좋은 도시가 갖춰야 하는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첫째, 자연환경을 잘 보존해야 한다. 종로의 쇼트레카 코스도, 청계천과 성북천 코스 모두 자연환경이 보존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 영화 엑시트 주인공 용남의 아버지 대사가 생각난다. "아무것도 하지마". 물론 도시를 가꾸는 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외치고 싶을 정도로 자연에 너무 많은 개발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둘째, 걷기 좋은 도시는 보행자 위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어린이, 휠체어 이용자, 시각 장애인, 유아차 이용자 모두가 통행하는 데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천변 산책로는 보통 도심지 보행로보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다. 계단을 통해 내려가거나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주 출입통로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배리어프리가 적용되어 있지만 계단만 설치된 곳도 있다.


모든 시민은 '산책할 권리'가 있다. 물론 산악지대마저 배리어프리를 적용하긴 힘들겠지만 도심지 내 산책로는 모두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디테일함에서 도시설계가들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신호등이 최소한으로 있어야만 한다. 신호를 기다리며 걷는 건 생각보다 심리적 불편함이 크기 때문이다. 청계천 산책로에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광화문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는 신호등이 걸음을 막아 세울 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사랑하는 이유일 테다.


신호등은 자동차와 보행자 공존을 위한 약속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보행자보다는 자동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보행신호는 짧고 횡단보도는 많지 않다. 보행자로서 좀 더 강력하게 주장하면, 신호등 없는 거리를 만들고 횡단보도는 항시 보행자 우선이면 좋겠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행자를 늘 조심하며 다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꽃과 나무가 봄을 알리고 있다. 각자 사는 도시를 걸어보며 계절감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다. 도시를 사랑하는 이라면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오마이뉴스 송고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34년 차에 '첫 나무'를 심어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