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진실을 환히 비춘다. 살처분 사진을 처음 본 건 2017년이었다. 채식하기 전이었다. 사진을 보며 '사람이 어찌 이리 잔인하고 악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분노의 화살은 사진에 담긴 방역복을 입은 이들과 정부를 향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동물보호법은 허울뿐이다. 동물보호법 10조에 따르면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 도살법, 전기 도살법 등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매몰 또한 마찬가지다. 당연히 살처분도 매몰이든 도살이든 법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살처분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동물은 생매장당하고 있다.
살처분은 병에 걸린 가축을 죽여서 없애는 일을 뜻한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르면 우역, 우폐역, 구제역, 돼지열병, 아프리카 돼지열병 또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살처분에 해당하는 병이다. 병에 걸리지 않은 가축도 살처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축전염병 매개체와 접촉하였거나 가축전염병이 퍼질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에 있는 가축도 때에 따라 살처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가축전염병 예방법 20조에 따르면, 병의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살처분이 가능하다.
살처분 현황
살처분 대상 가축전염병은 법정 제1종 가축전염병에 속해 있다. 치사율이 높고 백신으로도 감염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처분한다. 예를 들면, 구제역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매우 빠르게 전파되는데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구제역에 걸린 동물을 살려두어 바이러스가 외부로 퍼지면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구제역에 걸린 가죽을 살처분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한다.
2020년에만 920개의 농장에서 231,016마리 전염병이 발생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병이 발생한 가축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가축을 모조리 몰살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살처분 두 수는 실제 전염병이 발생한 두 수보다 훨씬 많다.
매년 이름을 달리 한 바이러스로 인해 동물은 생매장당한다. 살처분으로 희생된 동물의 수가 얼마인지 알아보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제도를 이용해 살처분 두수 자료를 받았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는 385,040마리,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여 년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총 391만 9763마리다.
같은 20년간 AI로 살처분된 닭, 오리, 꿩, 메추리 등 가금류는 총 9414만 9000마리다. AI로 살처분된 가금류의 수는 매년 천 단위로 기록되었다. 수가 엄청나기에 천 단위로 계수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20세기 최대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이 600만 명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살처분은 동물 홀로코스트라고 불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위 자료에는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살처분으로 인해 지급되는 보상금도 무시할 수 없다. 2019년 '구제역 백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구제역 보상금액만 3조 3436억 원이라는 예산이 소요됐다. 우리는 삼겹살 1근을 만 오천 원, 치킨을 이만 원 주고 먹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세금을 고려해본다면, 동물을 키우고 잡아먹는 대가는 결코 일이만 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구제역 백서는 2019년에 농림축산 식품부 구제역 방역과 와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엮었다.
살처분 피해자는 누구인가
동물권 단체는 살처분을 반대한다. 동물을 생명으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조치가 없는 학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 채로 땅에 묻는 건 동물보호법에 위반된다.
살처분은 비인간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금지되어야 한다. 살처분이 행해지는 지역 인근 주민에게 불편을 준다. 사체의 냄새가 진동하고 사체를 묻은 땅에서는 피가 새어 나온다. 2020년 11월 덴마크에서는 밍크를 대량 살처분했다.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면서 사체가 다시 지상으로 나오는 소름 끼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누리꾼은 좀비라고 표현했다. 누가 이 해괴한 광경을 보고 사체의 냄새를 맡고 벌건 피를 보고 싶겠는가.
주민뿐만이 아니다. 살처분은 담당 공무원에게도 고역스러운 일이다. 살처분 사진을 처음 볼 때만 하더라도 분노의 화살은 돼지를 몰아넣는 방역복 입은 자들에게 향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공무원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누가 돼지를 무덤에 산 채로 묻고 싶겠는가. 살처분 담당 공무원도 엄연한 피해자다. 김광수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구제역 유행으로 인해 돼지 살처분에 동원된 담당 공무원 가운데 11명이 과로와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권위는 지난 2017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함께 공무원 및 공중방역 수의사 2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6%, 즉 4명 중 3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가축 학살을 한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끼며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느끼며 매년 살처분 작업을 하는 데 무력감을 호소했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2020년 2월에 개정되어 살처분 가축의 소유자와 담당 공무원은 심리적, 정신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을 환영해야 할까? 심리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노동이라면 애초에 하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닌가. 살처분은 비인간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세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우리는 인간이기에 말과 글로 고통을 호소하지만 동물들은 흙에 묻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생매장당한다.
만약 우리 개나 고양이에게?
2019년 10월 2일 인천시 강화군에서는 돼지농장 39곳의 사육돼지 4만 3천602마리를 살처분했다. 당시 강화군 삼산면 한 가정집에는 애완용 돼지 1마리가 있었다. 해당 돼지도 살처분 대상이었다. 주인은 반발했지만 결국 행정대집행을 통해 안락사되었다. 가축전염병이 한 번 돌면 해당 지역의 가축은 몰살되고 멸종된다. 우리 집에는 반려묘가 있다. 이런 상황에 자연스레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만약 우리 집 반려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동물보호법상 돼지는 가축이고 고양이는 반려동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씁쓸한 현실이다. 돼지와 고양이의 차이, 인간과 고양이의 차이. 돼지는 마음껏 살해되어도 되는 사회, 개와 고양이는 지킬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살고 있는 종차별 사회다.
* 종차별주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의식이 있는 존재인 동물을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학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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