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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an 22. 2021

동물권 활동가들은 왜 천칭에 피를 뿌렸는가

동물권단체 직접행동 DxE(Direct Action Everywhere)는 지난 2019년 8월 용인의 한 도계장을 점거하여 닭들의 도살을 잠시나마 멈추었다. 이른바 락다운 시위였다. 이들은 업무방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항소했다. 지난 21일 수원지방법원 제7형사부(부장판사 김형식)에서 락다운 시위에 대한 항소심 선고재판이 열렸다.


항소심 선고재판에 앞서 DxE는 수원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활동가 은영은 "동물권리장전은 끔찍한 종차별을 끝내자는 시대적인 요구이며 법원의 문을 거침없이 두들겨 변화를 시작하자는 용기다. 역사적인 변화의 시작에 사회는 응답하라"라고 외치며 기자회견의 문을 열었다.

 

ⓒ DxE코리아 활동가


이후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한 활동가는 천칭에 동물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 물감을 쏟았다. 이내 천칭은 빨갛게 물들었고 천칭에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퍼포먼스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연출된 자극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살장에서 날카로운 칼날에 찔려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동물의 현실을 드러내는 액션이었다. 애석한 순간이기도 했다. 가짜 피에 주목하면서도 실제 동물이 흘리는 피에는 무감각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천칭을 든 활동가 옆에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한 활동가가 있었다. 그는 빨간 액체로 물든 두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우리가 직접 칼을 쥐고서 동물을 도살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동물 홀로코스트에 공모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 DxE코리아

퍼포먼스를 마친 후 연대 단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연대 발언에는 동물권단체 케어, 동물해방물결, 서울애니멀세이브, 녹색당 동물권위원회, 멸종저항 한국,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예수사회행동, 대학가 비거니즘 동아리 연합 비온대, 청년기후수호대 가디언즈오브클라이밋 등이 참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활동가와 30여 명의 시민들은 법원 안으로 이동했다. '동물'로서 연대한 시민들은 비록 코로나로 인해 재판 방청을 하지 못했지만 판결이 끝날 때까지 603호 문밖에서 자리를 지켜주었다. 603호에서 재판이 시작되었고 활동가들은 피 묻은 방역복을 입은 채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이 아니라 동물 학살의 목격자로 법정에 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 DxE코리아

지난 2020년 11월에 있었던 항소심에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활동가 향기는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정할 수만 있다면 저는 도살장이나 농장을 택했을 겁니다. 그곳이 이 재판의 진정한 당사자, 피해자가 있는 곳이니까요"라고 변론했다. 피 묻은 방역복을 입은 채로 법정에 출석한 활동가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도 벌금형을 선고했다. 벌금형 선고 유지의 이유를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었지만 결국 회사에 피해를 주었고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될 요지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지만 "수단과 방법, 법의 침해의 정도에 비추어 헌법상 표현의 자유나 일반적 행동의 자유의 통제를 일탈한 것"이라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 DxE코리아

항소심은 끝났지만 활동가들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동물권의 논의가 최초로 대법원에서 다시 한 번 다뤄질 예정이다. 법원의 판결 그리고 사회의 반응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매일 울부짖는 비명 소리와 피를 쏟는 고통은 사회에서 거세된 게 현실이다. 활동가들을 통해 도살장의 진실이 법정으로, 법정에서 세상으로 나왔다. 얼마나 많은 도살장을 점거하고 얼마나 더 많은 피가 법정에 흩뿌려져야 이 동물 학살은 끝이 날까.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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