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네 명이 주먹을 뻗고 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실전이다. 현역 복싱선수와 스파링을 하기도 하고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금새록키, 박광복, 설심바, 체력퀸’
네 명의 배우가 이번에는 캐릭터 이름이 아닌 링네임을 얻었다. 지난 7월 11일부터 채널 tvn에서 매주 금요일 <무쇠소녀단 시즌2>를 방영하고 있다. 단원은 금새록, 박주현, 설인아, 유이이다. 단장은 김동현이다. 그는 지금 예능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서 언뜻 보면 코미디언처럼 보이지만, 세계 최고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 6위까지 올랐던 격투기 선수 출신이다.
무쇠소녀단 시즌2는 복싱을 접해보지 않았던 네 명의 배우가 복싱을 배우고 훈련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복싱을 모르거나 처음 접하는 이들도 복싱이 어떠한 스포츠인지 친절히 설명해 준다.
복싱이 어떤 스포츠인지 알려면 직접 보고 체험해 보는 것이 제일이다. 1화에서는 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로 올라 인간 샌드백을 자처하는 김동현 관장을 2분 동안 공격한다. '육식동물 설심바'라는 별명을 얻은 설인아는 시작 전만 하더라도 자신감에 차 있고 때릴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주먹은 바람을 가르고 육중한 몸의 김동현 관장은 설인아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한다.
"아오 왜 안 때려져"
설인아가 주먹을 내며 외친 말이 상황을 말해준다. 그러나 몇 차례 김동현의 얼굴에 설인아의 주먹이 닿기도, 스치기도 한다. 그런데 2분을 마치고 난 뒤 설인아는 쓰러져버린다.
철인 무쇠소녀단이 2분만에 쓰러진 이유
새로 합류한 금새록을 제외한 단원들은 체력 하나만큼은 준비된 '철인'이다. 이전 시즌에서 3시간 30분 안에 철인 3종 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2분 동안 한 사람은 공격만 하고 한 사람은 수비만 하는데 왜 공격만 하던 사람이 쓰러지게 되는 걸까?
제 풀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2분 동안 상대를 공격하는 데 체력이 다 소진되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왜 힘들어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상상 속에서는 누구나 화려한 스텝과 강력한 주먹으로 상대를 타격하고 있을 테니까.
이는 철인 3종 경기와 복싱에서 사용하는 체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인 3종 경기는 기록 스포츠다. 훈련을 통해 체력을 갖춘다면 적절히 배분해서 사용하면 된다. 물론 철인 3종 경기도 기상 변화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복싱의 변수는 차원이 다르다. 복싱은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링에서 나와 마주한 상대다. 7전을 치렀지만 생활복싱대회가 여전히 긴장되는 이유다. 상대는 샌드백이 되어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때에 멈추지도 않고, 원하는 속도와 강도로 복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싱을 비롯한 격투기를 수련해 본 자들은 알 것이다. 특히 링 위에서 스파링을 해본 자들은 더욱 잘 안다.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내 몸을 내 생각대로 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움직임 때문에 당황하는 순간,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시간의 왜곡 현상을 링 안에서 느낄 수 있다. 2분은 그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1화에서 때리기만 하는 스파링은 그들이 얼마나 복싱 초보인지 보여준다. 복싱 햇병아리 시절이 떠올라 웃음도 나고 공감도 되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훈련하고 성장해 갈지 기대가 되었다. 2화부터는 복싱 기초 기술 훈련을 하면서 체력 훈련을 빼먹지 않는다. 복싱에서 체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김동현 단장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테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체력 없이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
기술을 익힌 이후로는 실전을 위해 체육중학교 복싱부 선수와 파리 올림픽 50kg 여자 복싱 국가대표 정주형 선수와 스파링을 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더라도 안면에 주먹을 맞는 일은 익숙한 일이 아니다.
2년 6개월 간 복싱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이 링에 올랐다. 강도는 그때마다 달랐지만 초반에는 매일 하던 주간도 있을 정도로 스파링을 좋아했다. 요즘은 건강을 고려해서 주 1~2회 정도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먹을 맞는 일은 두렵다. 얼굴로 먹고살아야 하는 배우라면 더욱 어렵지 않을까. 링에 오른다는 용기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무쇠소년단을 보며 아쉬웠던 점
무쇠소녀단을 시청하며 아쉬웠던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카메라가 꺼지고 배우들이 어떻게 체력 훈련을 하는지 자세히 보이지 않아 아쉽다. 복싱의 화려하고 강한 기술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를 섭외했으면 될 일이다. 무쇠소녀단 단원을 복싱을 접해보지 않았던 배우로 섭외한 건 도전하는 용기와 성장하는 서사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여느 무술이 그렇듯, 복싱의 진수는 반복에서 나온다. 매일 같은 줄넘기, 달리기, 원투, 풋워크.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몸은 점차 날카로운 칼과 방패가 되어간다. 여러 종목에서 사용하는 훈련법을 통해 복싱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유익했지만 단원들의 성장 스토리를 담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단원들 개인 운동 시간을 짤막하게 엿볼 수 있는 장면을 삽입했다면 어땠을까.
둘째, 복싱은 상대가 있는 스포츠인만큼 상대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진다. 아무리 수준급 복서라도 자신보다 잘하는 상대를 만나면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연습이나 훈련 때 실력이 반도 나오지 않는 게 다반사다.
단원들은 지금까지 몇 수는 위인 선수들과 스파링을 진행했다. 이를 지도 스파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 간에 스파링을 하며 실전 감각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도 스파링은 상급자가 강도를 하급자에 맞춰서 조절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대와 스파링 해보는 것이 실력 상승에 도움이 된다.
무쇠소녀단 시즌2의 목표는 복싱 생활체육대회 출전과 챔피언 도전기다. 실제로 얼마 전 지인을 통해 무쇠소녀단 단원들이 2025년 서울특별시 협회장배 생활체육복싱대회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왕이면 좀 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출전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순히 성과만을 위한 게 아니다. 복싱의 매력을 다채롭게 담기에도 더욱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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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래도 다이어트나 건강 관리 차원에서 스파링 없는 복싱 훈련이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스파링과 실전 대결이 복싱의 꽃이다. 건강 관리나 몸매 관리 차원이 아닌 승부의 세계에 빠진 여성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복싱을 조금이라도 접해 본 이라면 무쇠소녀단과 함께 'Born to box(본투복스)'를 함께 시청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본투복스는 무쇠소녀단이 방영되는 비슷한 시기에 유튜브 채널 꼰투TV에서 기획한 콘텐츠다. 본투복스는 담백하다. 프로, 아마추어 경험이 없는 일반 생활체육인을 모집해서 상금 100만 원을 걸고 스파링을 진행한다. 무쇠소녀단이 잘 정제된 복싱의 맛을 보여준다면, 본투복스는 실전 시합 위주의 매운맛 복싱을 보여준다.
복서의 심장을 지닌 여성 참가자들이 모였고 8강전부터 토너먼트 형식으로 시합이 열렸다. 결승전은 팀위너 프로모션에서 주최한 프로복싱 무대에서 펼쳐졌다. 프로복싱 경기 중간에 배치되어 결승전이 치러진 것이다. 길쭉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주먹을 장착한 하다운 선수와 쉼 없이 속임수와 스텝을 활용해 거리를 좁히려는 양새얀 선수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진다. 참고로 하다운 선수는 6위, 양새얀 선수는 1위로 선발 심사를 통과했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
복싱을 비롯한 격투기 관련 콘텐츠가 스포츠로서 전하는 감동은 사라지고, 온통 자극적이고 때론 폭력적인 것으로 물들어 있는 요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찰나에 <무쇠소녀단>의 결코 가볍지 않은 도전에 더욱 눈길이 간다. 매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지고 자연스레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복싱에 관심이 있었지만 두려웠던 이들이나, 복싱은 주먹질이라고 치부한 이들이 있다면 <무쇠소녀단>을 정주행 해보는 건 어떨까. 설심바가 생활복싱대회 우승 후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마침 오는 22일(금)에는 복싱 생활체육대회에 참가한 단원들의 이야기가 방영된다. 도대체 얼마나 치열한 승부가 펼쳐진 걸까.
하상욱 시인의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링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링 안에서 실제로 하는 건 쉽지 않다. 링에 한번이라도 올라본 이라면 일류 격투기 선수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못 믿겠다고? 그러면 당장 근처 복싱장이나 격투기 체육관에 등록하고 3개월만 다녀보라. 3분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당신을 겸손하게 만들테니까.
* 이 글을 쓰고 난 뒤 무쇠소녀단의 스파링과 그간 훈련일지가 방송에 담겼다. 요즘 더욱 재밌어진 <무쇠소녀단 2>가 흥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