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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 응원문화, 자성이 필요해!

by 현우

야구와 축구만큼은 아니지만 농구는 국내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이다. 발목을 다쳤던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호회에 참여하여 농구를 즐겨왔다. 중학생 땐 동호회를 만들어서 운동할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다.


골밑에서는 격투기에 가까울 정도로 몸싸움이 치열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거리 육상경기처럼 빠르게 공을 몰고 달리기도 한다. 간간히 노룩패스와 같이 상대를 속이고 동료에게 패스를 주고 공격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클러치 타임(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 상황)에는 극도로 긴장감이 올라가고 보는 이마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내는 농구를 좋아하는 나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말이나 평일 저녁이면 농구를 보게 되었다. 점차 박진감 넘치는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TV와 휴대폰 화면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아내가 직관(직접 관람의 줄임말)을 가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퇴근 후 저녁식사도 제쳐두고, 주말에는 쉬는 나를 제쳐두고 농구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집을 보니 서울삼성썬더스 사인볼이 TV 옆 오브제가 되었고 선수 유니폼은 아내의 잠옷이 되었다.


프로농구 개막전에서 본 어린이의 묘기


지난 3일에 KBL 프로농구 2025-2026 시즌이 개막했다. 마침 공휴일이어서 아내는 직관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부부는 공휴일에 각자 개인 일정을 따로 소화하기도 한다. 그날은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삼성썬더스 열혈팬 손을 붙잡고 농구장에 갔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응원 소리와 함성 소리가 닫힌 문을 두드렸다.


상대 팀이 슈퍼팀으로 불리는 팀이라서 그런지 많은 팬들이 자리를 채웠다. 경기장 내부는 응원객뿐만 아니라 함성 소리와 야유 소리로 가득 찼다. 역시 직관의 묘미는 남달랐다. 자리에 앉자 시선은 선수들의 피지컬에 압도되었다. 대다수 선수가 키 190cm가 넘고 골밑 싸움을 하는 센터는 100kg을 훌쩍 넘기도 하는 거구다. 꽤 거리가 있는 2층 관람석에서 보는데도 TV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커 보였다. 승부를 위한 선수들의 치열한 움직임이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쿼터 사이 쉬는 시간이었을 테다. 조명이 바뀌고 어린이 몇 명이 농구공을 들고서 코트 위에 등장했다. 그리곤 곧 음악에 맞춰 농구공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신선했다. 세네 개의 농구공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기도 하고 한 손가락으로 공을 돌리면서 반대쪽 손으로는 드리블을 하는 묘기도 보였다. 드리블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며칠 연습한다고 완성될 실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신 가요에 맞춰 아이돌 춤을 추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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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경기는 농구 경기를 하는 시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선수 입장 시간, 4쿼터 경기시간, 작전타임, 쿼터 중간 쉬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쿼터별 쉬는 시간과 작전타임에는 무엇을 할까? TV를 볼 때 쿼터별 쉬는 시간은 각종 광고로 채워진다.


실제 농구 코트에서는 응원을 바탕으로 한 각종 이벤트가 진행된다. 위에서 언급한 어린이들의 농구공 묘기도 응원의 일환이다. 일반적으로 응원단(치어리더라고도 불림)이 이 모든 이벤트를 진행한다. 퀴즈 맞히기, 관중의 자유투 행사, 특별 축하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홈팀을 응원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프로 스포츠 응원문화에서 발견되는 '성적 대상화'


응원단은 거의 여성으로 구성된다. 여성 프로선수가 뛰는 경기장에서도 응원은 여성의 몫이다. 경기장을 무대로 하여 최신 가요를 비롯한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문제는 늘 짧은 치마와 같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는다는 것이다. 날씨와는 전혀 관계없이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참고로 프로농구는 초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진행된다.


농구 코트에서만 벌어지지 일이 아니다. 프로복싱은 3분의 라운드마다 시합이 펼쳐지고 중간에 쉬는 시간 1분 동안에는 라운드걸이 올라와 피켓을 들고 라운드를 알린다. 프로복싱 경기장의 라운드걸 복장은 타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출이 심하다.


이는 프로 스포츠에서 여성을 시각적 대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를 사회학에서는 '성적 대상화'라고 부른다. 응원단과 라운드걸의 성적 대상화는 아마도 티켓을 구매해 준 관객들을 위함일 것이다. 쉬는 시간에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함일 테다.


언젠가부터 어린이 응원단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존 프로스포츠 응원 문화가 어린이 응원단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 부부는 종종 농구경기장을 방문하곤 했는데 어린이 응원단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방문한 3일에도 어린이들의 농구공 경기는 인상 깊었지만, 다른 때처럼 여전히 성인 응원단원과 함께 최신 가요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응원하는 모습은 동일했다.


멋지게 공연을 펼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양가감정이 들곤 했다. 이토록 많은 관중을 둔 무대 경험은 훗날 무엇을 하든 도움이 될 테다.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 조카 같은 아이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성인의 춤을 따라 추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농구 코트에서 재생되는 가요가 성적인 의미를 담은 노래가 많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 응원 문화... 자성이 필요하다


필자는 응원단과 라운드걸을 보는 게 불편하다. 프로스포츠 산업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다.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변화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다. 과연 변화의 여지가 있는 걸까.


특히 어린이응원단이 성인을 따라 복장을 입고 화장하고 춤을 추는 건 더욱 불편하다.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보호자가 동의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복장의 노출이 심할 뿐만 아니라 은유적으로 성적 표현이 함의된 가사의 노래가 다수다. 이에 맞춰 춤을 추는 걸 불편하게 보는 내가 이상한 건가?


게다가 프로농구와 같은 프로 스포츠 경기는 성인들만 보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즐긴다. 응원단의 노출이 심한 의상은 경기장을 방문한 어린이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염려된다. 노출이 심한 의상과 최신 가요에 맞춰 춤추는 몸짓이 여성의 아름다움 전부인 양 여겨질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아이가 라운드걸과 응원단의 복장에 관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어린이는 어른의 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아이브 그룹의 가수 장원영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 인해 장원영처럼 마르고 싶다며 다이어트를 하며 몸매 관리(?)를 하는 기괴한 초등학생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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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농구경기장 무대에 선 농구선수가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 되기도 하겠지만 쉬는 시간에 본 응원단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여성 어린이라면 후자일 가능성도 높지 않겠는가. 프로스포츠 전반에 관성처럼 따라오는 응원 문화와 성적 대상화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관성대로 해왔던 응원 문화에 변화를 꾀하는 것도 시도해 봄직하지 않을까. 복싱경기를 주관하는 홍보사에 따라 라운드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더원프로모션에서 진행하는 복싱 경기에서는 라운드걸이 없다. 조명이 꺼지고 배경음악만 재생된다. 링아나운서는 라운드 시작 전 "O라운드!"라고 알린다. 라운드걸 없이도 몇 라운드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프로농구 응원단도 성별의 구성에 변화를 준다거나 중노년을 선발하는 방법도 있다. 농구장에서 재생되는 음악, 그리고 아나운서의 멘트도 주의하여 선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응원 객석에는 어린이도 있기 때문이다.


제한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응원 방법과 중간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관객의 자유투 및 3점슛 프로그램, 선수와의 농구 대결, 기념 촬영 등 관객이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해 깊이 고민한다면 이보다 더 신선하고 흥미로운 다양한 이벤트가 많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응원단과 응원단을 운영하는 프로스포츠 구단의 내부 자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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