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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ug 17. 2020

현장관리인은 재시공을 싫어합니다.

간판 경력 25년, 김목수 이야기

간판 경력 25년 김목수.

짧은 경력이지만 근 2년 동안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조심스레 내린 결론이 있다. 목수뿐만 아니라 60세 이상 반장님들은 고집이 세다. 소통이 힘들다. 관리자의 뜻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물론 나의 부족함도 있다. 나 같은 젊은 현장관리인이 경력 많은 반장들과 일할 때 일의 진행이 원활하지 않은 건 당연한 결과다. 비단 건축판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테다. 반장들처럼 나이가 들었다는 건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걸 의미하고 경험이 많다는 건 잘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내포한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지워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 내 경험도 그들처럼 편견으로 굳어졌다.


김목수는 홀로 왔다. 김목수는 간판 경력 25년, 본업이 내장 목수가 아니다. 25년 동안 간판만 달았다며 이 정도 현장은 관리자가 없어도 알아서 뚝딱 처리한단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목수와 간판? 생각해보면 간판 작업과 목수 작업이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목수 일에 '자신 있다'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본인 IQ가 148이라 한 번 말하면 다 기억한다고 호언장담했다. 불안한 기운은 여기서부터 감돌았다.


김목수는 느릿느릿 그리고 성실하게만 일했다. 현장관리인은 성실한 기술자를 싫어하진 않지만, 실력 있고 책임감 있는 기술자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김목수의 실력과 무책임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벽이 틀어진 게 눈에 보였다.


데나우시에도 떳떳한 김목수.

'데나우시'다. (데나우시는 재시공이란 뜻이고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다.) 이런 상황에 수정을 요구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말을 건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라고 해서 이런 말들을 일꾼들에게 건네는 게 쉽진 않다. 더군다나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반장님들에게 말을 건넬 때는 더욱 그렇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직이 안 맞는 거 같은데 재시공해야 할 것 같아요.


벽이 틀어져서 그래.
그럼 한 면만 맞춰서 작업하면 되지 않아요? 레이저 띄워서 작업하신 거죠?
에이, 경력이 몇 년인데. 레이저로 안 해도 맞아. (직각자를 벽에 댄다.)

직각자 사이에 공간이 가득하다. 김목수는 직각자를 갖다 대는 그 모습에서도 엉성한 초보 티가 팍팍 났다. 한참 잘못됐다.


현장관리인은 여러 이유로 데나우시를 싫어한다.

첫째, 재시공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시간은 2~3 늘어나기 때문이다. 석고보드 떼어내고 다시 작업하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다른 부분의 마감 완성도도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작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러  확인하게 된다. 공수가 늘어난다.


둘째, 재시공하는 만큼 인건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목수 인건비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못해도 23 원에서 30 원까지 줘야 한다. 늘어나는 시간만큼 인건비도 늘어난다. 일부러 일을 천천히 하거나 데나우시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의도적으로 공기를 늘리는 것이다. 중소규모의 현장은 도급 형태가 아니라 일당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다음 현장이 정해지지 않은 일꾼들은 의도적으로 오래 현장에 있기 위해 수판 알을 굴리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현실이다.


셋째, 재료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존에 시공했던 자재들은 폐기 처리해야 하고 새로운 자재로 재시공해야 한다.


넷째, 잘못하다가는 후공정에 영향을   있기 때문이다. 석고보드 데나우시 정도는 후공정에  영향이 없기 때문에 다행이다. 하지만 타일, 방수, 미장과 같이 습식 공사의 경우에는 건조/양생 기간이 필요하다. 뒤따라오는 공정에 반드시 영향을 끼친다. 공정 스케줄이 미뤄지면 여러모로 손해다.


나는 김목수에게 레이저를 띄워서 수직을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사실 제안할 문제가 아니다. 확인하는 건 현장관리인의 일이고 의무다. 레이저를 띄웠다. 시작면과 마지막면이 20mm 차이 난다. 2mm도 아니고 20mm.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날림' 공사라 부른다. 날림 공사의 주역이 될 뻔했다.

레이저 띄우시고 수직 맞춰서 다시 작업 부탁드릴게요.
아니, 주택은 다 이렇게 해. 그냥 하자고.
반장님은 괜찮아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해요.
반장님 보고 이런 집 살라고 하면 좋겠어요?
고객이 입주해서 재시공해야 한다고 하면 그때 가서 책임 지실 건가요?
...


부족한 실력뿐만 아니라 결여된 책임감마저 들통이 나는 순간이다. 입주해서 재시공하게 되면 도배지를 뜯어내고 석고보드도 뜯어내야 한다. 마감 작업 후에 재시공하게 되면 공사비는 배의 배가 된다. 재시공은 본인 몫이 아니니 현장관리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목수뿐만 아니라 일당으로 오시는 분들  책임감이 없는 분들이  있다. 하루 일하면 하루 일당을 가져가니 뒷일은 남일이다. 8시간 동안 주어진 몫에 대해 책임지는  아니라 당일 8시간만 책임진다는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든 벽이 망가지든 틀어지든 그건 관리자의 문제인 것이다.


종종 목수들은 본인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한  아닌가. 일당에 대한 책임만큼은 해야 하는  아닐까. 이러면 어쩔  없다. 목수가 아니라 일당쟁이가 되는 거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때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인테리어 현장에서 20mm(2cm) 가당키나  걸까.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보통 목수들은 둘씩 짝지어 다니는데 김목수는 홀로 왔다. 목수 혼자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일의 특성상 내장이든 외장이든 둘이서 해야 하는 작업이 많다. 그래서 목수들은 보통 기공(오야지)과 조공(데모도)이 짝을 지어 다닌다. 혼자 왔을 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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