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인테리어 현장관리인 면접일기 #2
2020년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마쳤다. 국가직 공무원 시험과 군무원 시험, 건축기사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었지만 무언가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인테리어 회사 A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면접 제의하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공부도 안 되던 차여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과연 내가 바라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인테리어 회사가 나타날까?’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희는 관급공사도 하고 가리지 않고 다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공사면 500만 원이든 1억이든 다해요. 예를 들면 이번에도 15억 공사 마친 후에 클라이언트가 문짝 3개 교체해달라는 요청을 해와서 200만 원도 안 되는 공사 진행하고 왔어요.”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서라면 어떤 공사든 한다는 의미다. 돈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한다는 의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와 돈을 위해서 일하는 태도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대하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대표: 현장 일에 대해서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현장관리인이 직접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먼저 현장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이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년이 채 안 되는 경력이기 때문에 청소와 현장 정리는 기본이었습니다. 전 회사에서는 직접 목공 작업도 하고 전기 마감작업도 했었습니다. 마감 때에는 10시, 11시에 퇴근한 적도 있고요. 책임감 가지고 현장 마무리했습니다. 현장관리인이 책임감을 가지고 마감 작업을 하는 것과 상급자가 야근을 하도록 압박하는 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없는 야근은 지양했으면 해요.
대표: 네, 저희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현장 마무리되고 퇴근하면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음날 공정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저녁에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표: 이제 연봉에 대해서 이야기할 텐데요. 우선 사무실로 출근하는 교통비는 지급하지 않습니다. 현장으로 출근하거나 현장 내에서 일 때문에 이동하는 사유로 발생하는 교통비는 당연히 지급하고요. 차량도 있어요. 경차 한 대랑 스타렉스 한 대. 차량 없으시면 회사 차량 이용해서 출퇴근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저희는 다른 인테리어 회사처럼 밥값을 제공하지 않아요. 식대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그 부분 잘 고려하셔서 원하시는 연봉을 제시해주세요.
계산을 위해 시간을 끌어보고자 질문을 던졌다.
나: 식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거죠?
대표: 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나: 아 저도 현장에서 1년 정도 일하다 보니 어떤 부분 말씀하시는지 짐작합니다. 잠시만요..
대표: 원하시는 연봉 편하게 말씀하세요. 원한다고 다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원하는 만큼 받아야 일도 재밌게 하죠. 식대 관련해서는 사장인 저로써는 굉장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현장에서 부장 직급 단 소장들은 만원 넘는 도시락 아무렇지 않게 시켜먹고 아래에 있는 직원들은 6천 원 도시락도 눈치 보면서 시켜먹고. 사무실 직원들은 이유 없이 현장 들러서 공짜 점심 먹고 오려고 하고. 머리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밥값 포함해서 지급하기로 한 거예요. 아, 그러면 다시! 원하시는 연봉이?
나: 일단 대표님께서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는 보통 현장에서는 식대가 지원이 되니까, 그 조건으로 연봉을 생각해 왔거든요.
대표: 그게 얼마예요? 월 실수령액 말씀해보세요.
나: OOO만원이요.
대표: 아, 그러면 식대 대충 20만 원 정도 포함시키면 연봉 OOOO만원 정도 되겠네요. 그렇죠?
나: 네, 그 정도 되겠네요.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열심히 메모를 했는데 연봉 부분에서 더 가열차게 메모했다. 동그라미도 그리고 밑줄도 그어가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경력에 비해 많이 받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일도 고되고 식대도 연봉에서 차감되니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대표: 그러면 저희도 이번 주에 면접 일정이 잡혀 있어서 면접 진행하고 연락을 드릴게요. 혹시나 다른 곳에 취업하시면 연락 주시고요. 저희도 다른 사람 채용하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나: 네, 감사합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느낌은 굉장히 좋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인테리어 회사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첫째, 기존 회사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자부심. 대부분의 인테리어 시공회사들은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과 지식이기 때문에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있다. 보통의 회사 면접에서 이 자부심은 자만과 오만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배우고 싶다면 열정 페이를 지불하라는 둥 기술 배워 놓으면 쓸모 있으니 연차 쌓일 때까진 고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이런 식상한 꼰대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은 달랐다. 일에 대한 자부심은 느껴졌지만 오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둘째, 연봉에 대한 자세한 협의. 무엇을 포함하고 포함하지 않는지 정확히 전달했다. 위에 적진 않았지만 휴무에 대한 부분도 상세하게 전달해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식대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식대를 연봉에 포함한다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싶은걸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곳에 합격하면 꼭 연락을 주기로 했다. 다른 곳에 취업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연락하지 않았다. 면접 이후 다음 주중에 연락을 주시기로 했지만 연락받지 못했다.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지만 늘 있던 일이었다. 연락을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은 회사에 ‘못’ 가게 된 상황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