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Sep 19. 2020

청소하고 자재 나르려고 입사한 게 아닙니다.

현장관리인이 몸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

“아니, 현장관리인으로 입사했는데 청소하거나 무거운 자재를 나르기만 합니다.
현장관리인으로 채용된 거 맞나요?”


계약서 상 현장관리인의 업무는 건축시공 혹은 현장관리와 같이 단순하게 표기된다. 세부적인 업무 내용이 명시된 계약서가 있을까?  


회사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신입으로 채용된 대부분의 현장기사들은 도면을 볼 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비전공자라서? 아니다. 전공자여도 마찬가지다. 도면을 볼 줄 안다는 건 단순히 도면의 기호를 알아보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도면을 공간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져야 한다.

도면이 있으면 도면에 표기된 대로 시공하면 될 일인데 왜 현장관리인이 필요한 거지? 이유는 단순하다. 카카오 맵이나 구글맵을 실행해보자. 특정 지역을 검색하면 기본으로 세팅된 배율로 지도가 보인다. 확대하면 골목길까지 나오고 동네슈퍼까지 나온다. 도면도 마찬가지다. 지도가 아니라 약도의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지만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이 내용만을 도면에 담는다. 상세하게 기록하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도면에 담아야 하고 페이지 수가 제곱 배로 늘어난다. 핵심적인 내용만 담은 도면에 살을 붙이는 작업은 현장관리인의 몫이다.

단독주택 입면도

현장관리인이 필요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집은 혼자서 짓지 않는다. 목수가 필요하고 타일, 미장, 조적 기술자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공정을 다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총괄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 한 사람이 현장관리인이다. 설계자와 소통하고 모든 시공기술자들과 소통한다.


이런 면에서 신입 현장기사는 효율이 낮다. 현장에서 도면을 가지고 기술자들에게 지시할 수도 없고 지시한 바를 감독할 수도 없다. 당장 도면 수행 능력이 없다면 회사는 현장기사에게 뭐라도 맡겨야 한다. 결국 현장기사는 시멘트 포대를 거실에서 화장실로 나르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게 된다. 그 시간에 도면을 배우는 게 효율적이지 않냐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신입 현장기사를 위한 교육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몸으로 구르며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현장기사가 몸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용직 근로자의 단순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면 굳이 현장기사를 채용할 이유가 있을까?


 번째, 현장기사가  노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건축 시공업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건축시공은 물리적으로 한계를 지닌 일이다. 건축시공은 적재적소에 시행되어야 한다. 오늘 콘크리트를 타설 했다면 내일은 반드시 양생을 해야 한다. 다른 공종의 작업이 불가하다. 내일 바닥 방통을 치기 위해서는 오늘 반드시 청소가 마무리되고 바닥 위에 자재가 적재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과 공정 사이에는 늘 이런 일들이 존재한다.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번 자재를 이 방, 저 방으로 옮기기도 한다. 보통 청소와 자재 운반 업무를 위해서 일용직 근로자를 부른다. 현장에서는 잡부로 불린다. 이것저것 다 한다 하여 잡부로 불리는 것 같다. 잡부라는 용어는 다른 단어로 바꿔 불러야 한다. 현장 미화원 혹은 운반원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어쨌든 잡부 하루 일당은 적게는 12만 원, 많게는 14만 원이다.  만약 하루 종일토록 자재를 운반해야 한다거나 청소해야 한다면 인부를 부르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1~2시간의 일거리 때문에 하루 일당을 주고서 인부를 부를 수 없다. ‘일당 10만 원 현장기사가 손발을 바삐 움직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게다가 일용직 근로자에게는 수당 없는 야근은 강요할 수 없지만 회사 직원인 현장 기사에게는 수당 없는 야근을 강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기사 몸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번째, 현장기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현장기사는 잡부가 하지 않는 일들을 추가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공정을 전담하여 감독하기도 하고 시공 감독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촬영하고 보고하는 일을 맡는다. 경험이 쌓이면 시공관리 영역이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본인 담당이 아닌 시공업무여도 자꾸 눈으로 보고 익히면 그게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공무 업무와 각종 서류 업무도 맡는다. 보통 낮에는 현장을 관리하고 현장이 마무리되는 4시 30분 이후에 공무와 서류 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회사의 규모와 시스템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관리인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한다.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청소하고, 자재를 나르고, 두 발로 휘젓고 다니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각종 공무 작업과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현실이다. 현장기사의 숙명이다.




관련 글

 

매거진의 이전글 식대 포함된 연봉 협상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