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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Oct 31. 2023

경쟁사가 서비를 종료했을 때, 기획자가 하는 일

11년간 운영해온 '망고 플레이트'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 파운딩 멤버로, 개발을 맡고 있는 공동창업자인 대표님의 제안에 원래 하던 업계 일을 관두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꽤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던 분야라 그 분야를 IT로 혁신하겠다는 대표님의 비전에 합류를 결정했었죠. 물론 그건 첫 번째 아이템이 되었고... 이후 많은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몇 개의 아이템을 거쳐 현재 피봇한 아이템으로 몇 년 째 서비스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이라 거의 유일했던 직원에 가까운 적도 있었고, HR이라는 주요 의사 결정을 리서치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크진 않아도 로열티 있고 단단한 커뮤니티를 빌딩해왔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유저들의 사랑도 받고, 저희 서비스나 저희 회사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외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기라성 같은 스타트업, 또는 그런 속도를 가진 이 업계에서는 일주일 100시간을 일한다고 꼭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인생의 여러 지난 시절과 달랐던 거죠.


그런 점에서 최근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던 사례 중에 '지나고 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늘 자원이 없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어떻게 일이 되게 만들고 대세감을 만들어, 흐름을 작게나마 만들 수 있는지, 꼭 스타트업 분야가 아니라도 실무자나 일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참고가 되지 않으실까 싶어 남겨봅니다.


사건의 발단 - 경쟁사 서비스 종료 소식 & 유저들의 이주


"망플도 없고... 이제 의지할 건 뽈레 뿐"

- 망고플레이트 최다 팔로워 유저 & 인스타그램 음식 인플루언서 콜린비님 

어느 날, 저희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misik_photo 담당자가 댓글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발 빠르게 신상 식당을 소개하고, 안알려진 숨은 맛집 정보를 소개하는 계정이라, 댓글도 많이 달리고 DM도 많은 계정인데요. (유저들이 올린 일정 평점 이상의 가게들 중 특정 테마나 시의적절하게 시기에 맞춰 식당을 소개하다보니, 찐맛집 만을 소개해 신뢰도가 높다는 평을 듣습니다.)


알아보니 저희 분야에서 오랜 기간 운영한 경쟁사가 서비스 종료 공지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서비스 종료일은 10/31 로 한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임시공휴일이 낀 일주일짜리 추석 연휴에 한글날까지 있어 실제 영업일 기준으로는 훨씬 짧고, 게다가 신규 업데이트/서비스 출시 준비로 여념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저희는 잠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작년부터 저희 서비스에 경쟁사 대비 더 많은 포스트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훨씬 오랜 기간 이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서비스다보니 누적 리뷰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거든요.


이와 동시에 뽈레에 '망플 난민' '망고 홀릭'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계정들이 대거 등장했고, 비슷한 시기 가입을 해, 서로를 팔로우하고 열심히 포스트를 올리는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 (이후 망고플레이트 유저 분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일종의 VIP유저인 '홀릭' 단톡방에서 이주할 곳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다 함께 옮겨갈 플랫폼으로 UI유사도가 높은, 뽈레를 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홀릭 분들은 잦은 번개와 교류 등으로 친밀도가 높으셨고, 관계망과 데이터를 모두 옮길만한 곳으로 저희 서비스를 선택하게 되셨던 거지요.


마침 평소 인스타그램을 통해 교류가 있던 콜린비님을 뵙고 자세한 상황을 듣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망고 분들의 리뷰에 대해 '뽈레 차원의 데이터 이전 지원이 가능한지'를 물어오셨습니다. 마침 최초 상황 파악 후 대표님과의 논의를 통해 "데이터를 살펴봐야 하지만, 아마도 개발팀 차원의 데이터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은 상태라 흔쾌히 데이터 자동 이전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격 지원 - 일단 수동으로 데이터를... 앗! 앱 먼저 업데이트가 필요해 


망고 서비스 종료 화면과 콜린비 님이 올려주신 데이터 이전 사이트 오픈 소식


망고플레이트 측에서는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희망자에 한해 데이터 백업 파일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데이터 이전을 희망하는 한 홀릭 분의 데이터를 받아, 저희 DB와 매칭을 해 데이터 유효성 여부를 검토해보았습니다.


뽈레는 지난 몇 년 동안 굉장히 '순도 높은 *POI 데이터'를 중요하게 여기고 관리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전과 폐점 처리 역시 빠를 뿐 아니라, 신규 등록도 유저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편입니다. 유저들이 길을 오다가다 보이면 바로 등록해주시거든요.) 폐점된 장소의 리뷰를 제외하고, 정확한 매칭이 어려운 '해외 장소'를 제외하면 사실상 90% 수준의 리뷰 임포트가 가능했습니다. (일부 망고 주소가 잘못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자동 매칭 작업 후 일일이 수동으로 잡아주었습니다.)


*POI 데이터 : (Point of interest)는 위치 정보를 가진 관심 지점을 뜻하는 용어로, 디지털 지도 위에서 표현될 수 있는 주요 시설물을 말하며, 맛집 앱의 경우에는 음식점, 카페, 주요 관광지와 지명/지역 등을 지칭한다.


다만 뽈레는 기본적으로 SNS 구조라, 최신 포스트가 올라올 때마다 타임라인과 지역별 전체 타임라인에 노출이 되는 형태였고, 데이터를 한꺼번에 임포트할 경우 날짜에 상관 없이 타임라인을 보는 전체 유저에게 몇 년 전 포스트들이 한꺼번에 노출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게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데이터 구조의 변경 및 앱 업데이트가 필요했습니다. 여기 또 다른 이유로 앱 업데이트가 필요했는데요. 망고플레이트에서 넘어오신 유저들 중 수동으로 데이터를 이전하시던 분들 중 '오마카세' 방문기를 적다가 사진 갯수의 제한을 저희 쪽으로 물어오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포스트당 20개의 사진 갯수 제한을 두고 있었는데, 기존 30개에 맞춰 써오신 것들이 많다고 하셨기에, 이 역시 지원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앱 업데이트를 진행했고, 샘플 데이터를 보내주신 홀릭 분의 데이터가 성공적으로 이전되자, 이어 임포트 소식을 들은 망고 분들이 이어서 신청을 해주셨습니다. (연휴 중에도 가급적 하루 내 임포트 결과를 정리해 회신을 드렸는데, 아마 임포트 결과가 신기해 홀릭 단톡방에서 공유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포트가 되지 않은 리뷰는 파일로 정리해, 임포트 완료된 식당 수와 함께 메일로 일일이 회신을 드렸고, 숫자가 어느 정도 되자 '자동 이전 신청 사이트'를 만들어 오픈했습니다. (임포트가 되지 않은 경우는 해외나 폐점 식당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콜린비님께 전달드리고, 뽈레 앱 내에서도 바로 찾을 수 있도록 공지를 올리고, '미식포토' 계정과 '뽈레' 공식 SNS채널 등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유저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앱 내에 공지를 올리면서 '망고 회원 분들을 환영해주시기를' 부탁드렸고, 다행이도 공지사항에서 훈훈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데이터 이전' 뿐 아니라, 커뮤니티 자체가 이전될 수 있는 최소한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기존 회원분들에게 참 감사했습니다. (뽈레는 코로나 이전까지 번개도 자주 열리는, 열성적인 미식집단으로, 그간 좋은 분들이 앞장서 만들어주신 좋은 문화 때문에 굉장히 따뜻한 커뮤니티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

공지 사항에 달아주시는 댓글과 센스도 남다른, 뽈레 & 망고플레이트 글쟁이 분들의 댓글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


✨ 언론 노출 - '이번 주 일잘한 브랜드' (캐릿) 선정과 바이럴


그 와중에 이런 트위터가 올라오고... (조회수 6만이라니...)

며칠 동안 앱 다운로드가 상당히 올라가더라고요. 뽈레는 트위터 계정을 꽤 오래 운영해왔기 때문에, 리트윗을 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원문 : https://twitter.com/songpapig/status/1712493096641139032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런 메일을 받습니다. �


<대학 내일>을 혹시 아시나요? (아신다면... 제 세대이실 확률 100%!!)


이 대학내일은 저때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대학생 무가지 신문이었는데,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종이잡지의 시대가 저물자, 20대를 알고자 하는 기업과 마케팅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20대 연구소를 운영하며, 'MZ트렌드 웹진'과 '캐릿 레터'를 발행합니다. 모두 유료 멤버십이지만, 다수의 20대 패널을 확보해 워낙 트렌디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해 저도 평소 즐겁게 구독하는 매체기도 합니다.


요즘 20대들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진정성'이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사례를 좋게 봐주신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마치며 - 데이터 이전은 지금도 진행 중 


망고플레이트 서비스 종료는 10/31 로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오전부터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이전으로 개발팀이 다른 업무를 못하고, 이쪽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백업파일 특성상 이미지는 서버에 존재하는 URL을 통해 임포트가 되기 때문에 서비스 종료 후에는 데이터 이전이 불가능합니다)


망고 플레이트 서비스 내 '가고싶다' 에 대한 이전 요청도 있어서, 이 역시도 지원을 해드리고 있는데요. (요것도 약간 손이 많이 갑니다...만, 뽈레는 '핀 기능'이 핵심인 서비스인 만큼, 함께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명 가까이 데이터 이전을 신청해주셨고, 홀릭 중에는 80% 이상이 신청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 총 이전된 포스트는 10만 이상, 사진은 50만 이상으로 최종적으로는 망고플레이트 누적 리뷰 수의 15% 정도가 이전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사실 크게 대단한 결정이나 성과는 아닙니다만, 과정 하나하나에 고민이 있었고, 데이터 이전을 받으신 분들의 기뻐하는 답장을 받을 때마다 '참 잘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순 데이터 이전이 아니라, 새로운 터전이 되실 수 있게, 곧 대규모 업데이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식당 방문을 기록하고, 일일이 평가를 남기는 것의 의미를 잘 알기에, 망고플레이트 유저 분들이 저희를 먼저 선택해주셨기에, 저희가 가능한 한 그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망고플레이트' 역시 유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점이었는데요. 마찬가지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만들어오신 망고플레이트 임/직원분들께도 리스펙트를 표하고 싶습니다.


제 다이어리에는 언젠가 유저 인터뷰로 방문하신 뽈레 유저분이 남겨주신 한마디가 항상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다른 것은 먹는 것 뿐.
안 쓰고 지나가면 없는 날, 없는 기록이 되니까.
먹은 걸 기록하고, 먹을 것을 기록하는 곳. 그 곳이 제겐 뽈레에요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참 어렵지만, 언제나 유저분들 때문에 웃고, 힘이 납니다. 스타트업 하시는, 기획하시는 모든 분들 오늘도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s://polle.com/home/mangoplate

데이터 이전 사이트 링크는 위와 같습니다. 주변에 망고플레이트에 데이터를 쌓아두신 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그간 순도 높게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90만 개의 리뷰와 그 이상의 평점 데이터가 쌓여있습니다. SNS 구조라 신뢰도 낮은 데이터를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가짜 리뷰를 거르는 시스템도 개발되어 있는데요. 국내 최다 리뷰 & 순도 높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장소 추천 알고리즘' 등을 준비 중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가벼운 테스트라도?)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댓글이나 rumee@polle.com으로 메일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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