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이 순간을 기억해주렴.

저녁밥을 짓다가 들던 생각

by rumi

아침.

내 손 위에 올린 네 작은 손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되뇌었다.


아가야,

부디 이 순간을 기억해주렴.

내가 너를 무척 사랑스러워하며 바라보았고

너는 그런 나를 무척 맑은 눈으로 바라봤으며

어떤 날은 네 손이 무척 따뜻했고

또 어떤 날은 네 손보다 따스했던 엄마 손의 온기를.


부디 이 순간을 기억해주렴.

엄마가 네게 미간을 찌푸리고

두꺼운 목소리로 나무라는 날들의 그 외로움과 서운함 말고도,

너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저항없이 웃으며 즐거워하던 얼굴과

그런 엄마의 웃음에 너는 배시시 웃던 어린 날을.


엄마는 그런 어린 날이 잘 기억나질 않아.


분명 엄마의 어릴적 일기장 어딘가엔,

그렇게 무척 즐겁고 다정하게 외할머니와 나눈 기억이 적혀 있는데

왜 그런 게 자세히 떠오르질 않는지 모르겠단다.

그래서 참 아쉬워.


그래서 엄마는 이토록 우리가 웃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행복했던 날들에 함께 했던


서로의 표정들, 말투들, 기분좋은 체온을


네가 아주 희미하게라도,

어슴푸레라도 기억하기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 다정한 온기가 네 가슴 속에 작은 불씨로 심겨져

어느 무척 외롭고 속상한 날에 네 맘을 조금이라도 데워줄 수 있다면_

하고 욕심을 내본단다.


아가야,

부디 이 순간을 기억해주렴.


엄마의 가슴에 폭 안기던 너의 작은 체구에 무척 행복했던 엄마를.

너를 번쩍 들어올려 토닥이던 충분히 젊었던 엄마를.

너는 기억나지 않는 숱한 밤들에 그 작은 발을 가만히 만지작대던 서툰 엄마를.


너를 너무나 사랑했던 나를.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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