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change> 시리즈 3/6
AI와 함께 쓰는 디자인 픽션
<The Exchange> 세 번째 에피소드
[스트리밍 ON - 채널: The Exchange Live]
“여러분, 데이터를 사고팔고 - 가치만 맞으면 다 거래하는 The Exchange Live의 오늘 손님은… 애기네요.
미성년자 데이터? 쓸모없어요. 법으로 다 보호돼서 거래 가치 제로!!
애들이 들고 오는 건 게임 점수, 졸업앨범 사진, 아니면 가짜 틱톡 구독자 수… 솔직히 오늘은 빨리 끝내고 저녁 먹으려고 했는데… 뭐, 들어오시죠.”
비가 갠 늦은 오후.
VHS가 작은 소년이 걸어오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열다섯? 열여섯? 쯤 되어 보이는 외모, 한참 뛰어다닐 것 같은 나이에 비해 걷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좁은 골목길에서 몇 발자국 걷다가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모습이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카메라 영상이 평소보다 훨씬 오랫동안 손님을 비춘 후에야 The Exchange 문이 열렸다.
후줄근한 후드티를 입은 소년이 들어왔다.
소년이 카운터 앞에 서자, 지수의 시선이 소년의 손목에서 잠시 멈췄다.
그의 왼쪽 손목에는 오래된 NHS 바이오메트릭 밴드가 언뜻 보였다. 스트랩이 헐렁해 보일 만큼 앙상한 손목. 심박수와 혈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밴드 스크린은 생활 스크래치가 잔뜩 나서 소년의 얼굴빛만큼 탁했다.
소년은 숨이 가쁜지 호흡을 조절하며 지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여기가 그… 데이터… 교환… 하는…”
한참 걸리는 소년의 질문에, 지수는 턱을 괴고 TV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을 흘끗 봤다. 손님이 없는 날도 있지만, 이런 손님은 없는 것보다 더 짜증 났다.
“네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어떤 걸 교환하러 왔나요?”
소년은 짧게 말했다.
“저… 기록에서 지워주세요.”
“아ㅋㅋㅋ 학생! 사고 쳤나요? 학교 생활기록부? 아니면 게임 계정 정지 리스트 풀어달라고요?”
소년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병원 거요. 제 의료 데이터 전부 지우고 싶어요.”
지수가 피식 웃으며 소년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마치 방해되는 파리를 가게에서 쫓아내는 것처럼.
“미성년자 데이터는 안 팔려요. 법—”
“아니에요.” 소년이 끊었다.
“미성년자 법은 개인 정보를 막아주죠. 그런데요, 아프면 미성년자가 아니라 그냥 실험실 생쥐랑 똑같이 취급해요. 어릴 때부터 각종 제약회사들이 와서, 치료해준다 하고, 엄마 아빠 꼬셔서 계속 임상 실험 대상자로 이런저런… 약 실험해 보고, 실패하면 그냥… 계약금 주면서 비밀 유지 서류 사인하라 그러고. 이제 약봉지만 보면 지긋지긋해요.”
소년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작은 어깨가 들썩거렸다.
“더 아파졌는데, 그런 말은 다른 사람들한테 하면 안 된대요. 그 대신 광고에 내 이야기가 나와요. ‘기적의 소년’이라고. 웃기죠?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다들 신약이 희망이라고 믿게 되는 거예요.”
앙상한 두 주먹을 꼭 쥐고 따박따박 말하는 소년이 하는 이야기가 지수에게 낯설지 않았다.
정부가 수십 년 동안 메우지 못한,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지수의 동생이 겪었기 때문이다.
NHS 의료 데이터와 환자 개인정보가 따로 보관되는 구조. GDPR 발표 후에 매년 개인 정보 관련한 법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2030년 개인 데이터 소유권 조항을 개정할 때 국가 의료 기관인 NHS와 미리 협업하지 않은 바람에, 의료 시스템 관련 시스템 서버와 규정에는 구멍이 많다. 결과적으로, 이 나라 국적의 미성년자 환자의 개인 정보는 일반적으로 보호되지만, 의료 기록과 관련된 데이터는 - 신상 정보까지연결해서 메디컬 업계에서 패키지로 거래하고 있었다.
소년의 질병, 신상 정보, 메디컬기록, 그리고 부모의 정보까지 모두 의료 업계와 제약 회사들에 몽땅 노출되었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이 소년에게 계속 접근한 게 뻔했다.
지수의 동생이 불치 판정을 받았을 때도 봤던 바로 그 구멍.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던 지수는 괜히 목을 가다듬으며 동생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의료 데이터는 까다로운데요,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 건데요?”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이제 다 까버릴 거예요. 회사 이름, 신약 실험 실패 기록, 다. 그리고… 제 신상 정보를 거기서 없애주세요. 그다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지수는 소년의 분노가 마음에 들었다.
거짓말을 퍼뜨리는 놈들, 그리고 그 거짓말을 깨뜨리고 싶은 놈. 재밌는 게임이 될 수 있겠다 - 고 생각한 지수의 손이 VHS 카메라 옆 전원 버튼으로 향했다.
딸깍. ‘LIVE OFF’ 표시가 떴다.
미성년자의 신상 정보 거래 기록을 스트리밍 하면 계약이 성사될 수가 없으니까.
“글쎄요, 학생이 원하는 기록 삭제랑… 뭐를 교환할 건가요?”
소년은 주머니에서 작은 크립토 월렛 태그를 꺼냈다.
“10살 이후 건강 데이터, 제약 회사, 임상 실험 결과 모두 공개. 계약 조건으로 얼마 준다고 했는지랑, 비밀 유지 요청한 조항 내용도 다 공개해도 돼요.”
지수는 가볍게 웃었다.
“학생 데이터는 메디컬 회사들이 사고 싶어서 줄을 설 텐데? 이걸 그냥 공짜로 뿌리고, 신상 정보를 지워달라는 거네요? 라이벌 회사에 팔면 돈 많이 줄텐데요, 안 아까워요?”
소년은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그 데이터는 원래부터 나한테 아픔만 줬어요.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요.”
잠시,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소년이 후드티 소매 끝을 잡아당기며 손목을 감싸는 버릇이 눈에 들어왔다. 지수는 병원 침대에서 손목에 연결된 수액줄을 만지작거리던 자기 동생과 겹쳐 보였다.
의료 데이터는 접근하기가 복잡했다. 정부와 의료 업체의 보안 프로그램이 이중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지수는 오랜만에 머리를 썼다.
미국 빅테크 회사마다 모셔가던 시절 - 깔끔하게 시스템에 침투해서 디코딩하고, 데이터를 수정하는 모습이 외과 의사 같다고, 지수를 데이터 치프(Chief)라고 별명을 붙였던 업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년은 가게에 진열된 레트로 디바이스들을 구경하며 잦은 기침과 불규칙한 호흡을 이어갔다.
데이터 삭제 절차가 끝나자, 지수가 물었다.
“자, 신상 데이터는 다 지워졌어요. 이제 뭐 할 거예요?”
소년은 처음으로 조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배 타고 세계를 볼 거예요. 병원 말고, 하늘이랑 바다만 보는 여행.“
지수는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제 동생 녀석도 학생처럼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소년이 문을 나서자, 골목 바람이 잠시 멎었다.
지수는 아팠던 동생의 잔상을 꼴 보기 싫은 것처럼, 거칠게 가게 간판 불을 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