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isode 2: 성스러운 사랑

<The Exchange> 시리즈 2/6

by Rumierumie

AI와 함께 쓰는 디자인 픽션

<The Exchange> 두 번째 에피소드



Episode 2: 성스러운 사랑


[스트리밍 ON – 채널: The Exchange Live]

“여러분, The Exchange Live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현금보다 데이터가 더 값진 곳, 물건을 사든, 팔든, 숨기든! 다 교환 가능해요. 단, 결과는 up to you!


제 이름은 지수. 런던 해크니 뒷골목, 중고 IT 상점 사이에 깨진 네온 간판 밑에서 제 가게를 찾아보세요. 못 찾겠다고요? 그럼 아마 제가 안 필요한 걸 거예요.


오늘은 오래된 시계 하나로 사랑을 부활시킵니다. 웃기죠? 숨소리, 심장 박동, 잠꼬대, 문자, 음악 취향… 그 사람의 하루가 전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객은 ‘24시간 그녀와 함께’라는 옵션을 원합니다. 뭐… 성스러운 사랑이라네요.

글쎄요… 성스럽든, 위험하든, 그건 보는 여러분 몫입니다.”



비는 멎었지만 골목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The Exchange 간판 위, 두 대의 VHS 카메라가 느리게 회전했다. 하나는 골목을 향해, 지수가 손님이 오기 전에 그들의 걸음을 미리 볼 수 있도록.

다른 하나는 계산대 쪽을 향해, 지수의 얼굴과 손을 잡아 브라운관 TV로 송출했다. TV 화면 위로 얇은 노이즈 줄이 수평으로 흘렀다.

계산대 주위는 오래된 스마트 기기와 부품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금이 간 AR 글래스, 케이스 없는 태블릿, 한때 인기였던 홀로그램 프린터. 이 골목의 다른 중고 가게와 달리, 여기서 파는 건 물건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문이 열렸다.

회색 카디건을 걸친 남자가 들어왔다. 담배와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 먼지 낀 머리칼, 텅 빈 눈빛. 그는 품에서 시계를 꺼냈다.


스마트워치 ‘Forever for 2’ 컬렉션. 2028년, 올림픽 공식 스폰서였던 스마트웨어 테크 회사에서 - 수백만 연인이 서로의 손목에 채웠던 사랑의 증표 -라는 간질간질한 마케팅 캠페인이 크게 성공한 덕분에 전 세계 커플들이 차고 다닌 스마트워치였다. 유행이 끝나자 ‘러브 커프’라 불리며 중고 시장으로 흘러갔지만, 이 남자에겐 여전히 성스러운 사랑의 증거물이었다.


레더 스트랩은 반질하게 닳았고, 금이 간 화면 모서리에는 하트 로고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 안에… 그녀가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숨소리, 심장 박동, 잠꼬대, 문자, 음악 취향… 우리가 함께한 날들이 전부.”


지수는 시계를 받아 들여다보다,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래서, 뭘로 바꾸고 싶은데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오늘이 딱 1년 째인데… 다시. 어디서든 만나고 싶어요.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서 부르던 노래, 주방에서 칼질할 때의 박자, 저녁 영상통화… 전부. 집안 스피커, 휴대폰, 자율차, 스마트 냉장고까지… 전부 그녀여야 합니다. 그녀가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지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면 인공지능 인형을 사는 게 빠를 텐데요? 요즘 피부 재현도 그럴싸하고, 외모 커스터마이징 가격도 많이 내렸잖아요. 가게에 중고 제품도 있는데, 보여드려요?”

“그건 가짜예요. 기계가 만든 웃음, 스크립트로만 대화하는 눈빛… 절대로 싫습니다. 나는… 성스러운 사랑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그녀는 내 전부였어요.”


구구절절한 사랑타령이 더 이어질까 봐, 지수는 시계를 뒤집으며 화제를 바꿨다.

“시계는 당신 거지만, 그녀의 데이터는 반쪽짜리예요. 남은 반쪽은 당신 겁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뜻이죠?”

“그녀가 당신을 바라보던 눈, 당신에게 말하던 목소리, 당신과 함께한 영상통화 기록. 그건 그녀 쪽이 아니라, 당신 쪽 데이터죠. 둘 다 있어야 완전체가 됩니다.”

남자는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그녀와 매일 함께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네, 제 데이터도 전부 주겠습니다.”

남자가 두 손으로 소중하게 들고 있던 시계가 어느새 지수 손으로 넘어갔다.

케이블 몇 개를 연결하자 시계가 켜졌다. 오래된 제품이라 시간이 걸리지만, 데이터가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방대한 라이프 로그 데이터가 지수의 개인 서버로 넘어가면서 파일들이 일부 재생됐다.


그녀의 심박수 그래프 위에 붙은 메모와 함께, 녹음 파일이 재생된다. 수면 데이터 속 잠꼬대와 웃음소리. 남자가 좋아하는 음악 레시피를 모아둔 보이스 메모, 드라이브 데이트할 때 듣는 둘 만의 음악 리스트, 같이 여행 다녔던 곳과 맛집 지도들. 그리고 보이스톡으로 남자가 비행기표를 사느라 읊어준 신용카드 번호, 얼굴, 영상 기록이 합쳐졌다.

데이터 전송이 몇 분쯤 계속되더니, 남자의 스마트폰으로 AR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마트폰 홀로그램 렌즈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영상에는 - 그녀가 어깨 길이의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려 묶으면서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오빠, 오늘 7시에 약속 있는 거 기억하지? 캘린더에 저장해 놨던데, 또 알람 껐어? 나도 같이 가도 돼?”

그녀가 웃었다. 마치 화면 속에서 그에게 조금 몸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는 숨을 삼키고, 눈시울이 젖은 채 웃었다.

문이 닫히자,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지수는 스트리밍을 끄고 ‘프라이버시 보호 파일_INTIMACY’ 폴더를 열었다.


아까랑 똑같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는 또 다른 네 개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배경, 다른 스타일의 외모, 다른 손길.

“너는 내 전부야.”

은밀한 그녀의 속삭임이 다섯 번 반복되는 성스러운 사랑.




그가 원한 건 그녀의 전부였다.

지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다. 지수는 그 파일을 개인 NFT 보관함에 저장한다.


죽은 사람에겐 프라이버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기 데이터는 소유자가 동의하면 끝이었다.

모션 재현 공장이랑, 개인 정보 유통업체 몇 군데만 연락하면… 오늘 비트코인 몇 개쯤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가가 천천히 휘어졌다.

골목 어둠이 더 짙어졌다.







keyword
이전 24화Episode 1: 팔려버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