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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오피스> 에피소드3을 쓰며

Episode 3: 돌아온 사람들

by Rumierumie

<고스트 오피스> 시리즈는 런던의 여름 날씨와 함께 연재했다.

주인공 유라가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장면을 쓸 때, 영국 학교의 여름방학은 무려 6주지만, 부모의 연차 휴가는 평균 25일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장 동료들과 농담처럼 떠들었었다.


그럼 도대체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은 뭘 하는 거지?


같은 팀의 워킹맘, 워킹대디들의 대답은 씁쓸했다.

만약 부모님이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휴가를 쓰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거나, 그마저도 어려우면 어린이들을 모아 보내는 여름 캠프 프로그램에 보낸다고 했다. 아이들도 부모님이 시간을 내지 못해 가야 하는 여름 캠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의 여름 방학 동안, 잠시라도 같이 여름휴가를 쓰는 부모들은 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1. 가치와 시간이 비례할까

에피소드 3을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사람의 가치는 시간을 얼마나 쓰느냐와 비례할까?

영국에서 10년째 직장을 다니며 본 건, 모두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만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휴가를 쪼개 쓰며 버티는 사람들, 아이들이 잠든 뒤 다시 컴퓨터를 켜는 부모들, 오후에 조금 일찍 자리를 뜨며 괜히 작아지는 어깨들. 그렇게 애써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결국 자기 자리를 증명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기술이 이 균형에 개입한다면 어떨까. 70/30이라는 숫자로 나의 기여도를 재단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한다면? 결국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기술과 함께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했는가’로 가치가 바뀔지도 모른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는 AI 자동화로 영향을 받는 여성 일자리 위협의 비중이 남성보다 세 배나 높다*고 밝혔다.

*링크 - https://www.euronews.com/next/2025/05/24/womens-jobs-three-times-more-vulnerable-to-being-taken-by-ai-than-mens-new-report-warns


<고스트 오피스>의 유라도, 어쩌면 이 숫자의 한가운데 서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갈수록 정밀하게 쪼개져 평가되는데, 그만큼 더 잔인해지는 건 아닐까.



2. 회사는 갑일까, 을일까

기술에 의존하는 존재가 개인만이 아니라 회사라면?

Figma IPO 자료를 보며 한 번 더 놀랐다. 하루 AWS 사용료만 약 30만 달러, 1년에 1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고 한다. 지금은 고성장 기업이니 가능한 계산이지만, 언젠가 시장이 포화되거나 성장세가 꺾이면 어떨까. 결국 비용을 줄이는 방식은 늘 비슷하다.


<고스트 오피스> 유라의 회사도 그랬다. AI 아바타 버전을 다운그레이드하고, 직원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술 앞에 ‘을’이 되어버린 회사, 그리고 회사의 입장이 바뀌자 ‘사람’들의 워라밸이 무너진다.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해 준다며 효율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시간을 더 갉아먹고 있지는 않을까.

*링크 - https://www.infoq.com/news/2025/07/figma-aws-300k-daily-bill/



3. 브런치 멤버십 콘텐츠와 글의 호흡

영상 업계에서는 “첫 3초 안에 시선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흔하다. 글은 어떨까?

짧은 글은 시처럼 단숨에 울림을 전한다. 반대로 긴 글은 서서히 쌓아가며, 독자가 오랜 시간 함께 걸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요즘 플랫폼은 초반 몇 줄만 보여주고, 읽을지 말지를 바로 선택하게 만든다. 독자도, 작가도 모르게 초반의 매운맛을 더 선호하게 되는 건 아닐까*.


모든 글이 똑같은 호흡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처럼 압축된 글도, 소설처럼 느리게 스며드는 글도, 쓰는 사람이 전달하고 싶은 속도로 읽는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의 선호하는 포맷이나, 형식*도 무시할 수는 없는데,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쓰는 이야기가 읽는 사람들과 어떤 리듬으로 연결되는가 아닐까.

*참고링크 - https://www.go-globe.com/how-people-read-content-online-statistics-and-trends/


4. 다음 시리즈, 어떤 방식으로 만날까

이번 <고스트 오피스> 시리즈는 멤버십으로 발행해 왔다. 관심을 많이 받아서 즐거웠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있었다. 이야기를 다 읽기도 전에 허들이 생겨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챗GPT 녀석에게도 물어봤다. 브런치 멤버십 콘텐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뾰족한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초반 몇 편은 더 많은 사람이 온전히 읽을 수 있도록, 멤버십이 아닌 일반 공개로 발행할 생각이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떤 호흡으로 함께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AI와 함께 쓰는 디자인 픽션,

토요일에 시작하는 다음 시리즈 제목은?


<The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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