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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팔려버린 그림

<The Exchange> 시리즈 1/6

by Rumierumie

AI와 함께 쓰는 디자인 픽션

<The Exchange>



Episode 1: 팔려버린 그림


[스트리밍 ON - 채널: The Exchange Live]

“여러분, The Exchange Live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선 현금보다 데이터가 더 값집니다. 물건을 사든, 팔든, 숨기든! 다 교환 가능해요. 단, 결과는 책임 못 집니다.


제 이름은 지수. 런던 해크니 뒷골목, 중고 IT 상점 두 개 사이, 깨진 네온 간판 밑에서 가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찾는 법요? ‘습기 냄새나는 골목’ 검색하면 돼요. 물론 검색 기록은 제가 받습니다.


오늘 거래 로그 시작합니다. 첫 손님은 미대생, 꿈이 싱어송 라이터인데, 팔로워 사고 싶대요. 대가는? 스케치북 한 권. 근데 이게 그냥 스케치북이 아니에요. 일본 전통 회화풍으로 그린 산수화, 꽃, 물고기 — 근데 재질은 메타버스에서 바로 쓸 수 있게 변환해 놨습니다. 붓 터치 그대로, 먹물 번짐 그대로, 근데 빛에 따라 3D로 반짝여요.


제가 그랬죠, ‘한 번 거래하면 네 그림 작품에 너 이름은 여기에 안 남는다. 알지?’

대답이요? ㅋㅋㅋ 당연하다는 표정이었어요. 안대요 ㅋㅋㅋ


그래서요? 해줬죠. 그리고, 여러분… 보이세요? 벌써 AR 광고판에 떴습니다. 누가 봐도 그녀 스타일인데, 작가 이름은 없죠. 대신 대기업 로고만 번쩍입니다.

세상 진짜 빠르죠? ㅋㅋㅋ 기분이… 좋네요.”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해크니 골목의 공기는 눅눅했고, 오래된 전자부품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벽돌 틈새에 스며 있었다. 골목 끝, 중고 IT 상점과 스마트 기기 수리점 사이, 깨진 네온 간판 아래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 위에는 손으로 그은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THE EXCHANGE.


지수는 문을 열고, 어두운 매장 안의 작은 조명을 켰다. 천장에 매달린 카메라 두 대가 동시에 깜빡였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스트리밍을 켰다. 이 골목까지 오는 사람은 적었지만,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여러분, The Exchange Live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선 현금보다 데이터가 더 값집니다. 사고, 팔고, 숨기고… 다 교환 가능하죠. 단, 결과는 책임 못 집니다.”

지수는 스트리밍 버튼을 켜고, 입꼬리를 올리며 대본처럼 멘트를 흘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종이 울리고, 비에 젖은 후드티를 입은 여자애가 들어왔다.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수를 똑바로 바라봤다.

“여기… 제가 가진 걸 데이터 가치로 바꿔서, 원하는 걸로 교환할 수 있는 가게… 맞나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수가 물었다.

“뭐 필요해서 왔어요?”

“그… 스트리밍 채널 팔로워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시큰둥한 지수 얼굴을 보고는 얼른 덧붙였다.

“노래를 만들어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거든요. 부모님은 미술을 계속했으면 하시는데, 저는 노래가 더 좋거든요. 몇 주 전에 디스코드랑 유튜브 채널 만들고 샘플도 많이 올렸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줘요. 그래서 빨리 채널을 키워서, 유명해지고 싶어요.”


지수는 하품을 참듯 눈꺼풀을 깜빡였다.

“팔로워 숫자는 싸고, 가짜 계정은 더 싸죠.”

“아니요! 그런 가짜 숫자 말고요, 진짜 사람들이 필요해요. 알고리즘을 조정해서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게 하고,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요.”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 그건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들어주면,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그게 사람이든, 시스템이든 상관없어요.”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케이스는 흔했다. 욕망은 크고 간절했였지만, 거래하려는 대가는 하찮았다. 그냥 이번 손님을 그냥 보낼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줄 건데요?”


그녀는 가방을 열었다. 주머니 속 몇 장의 지폐, 잠깐 머뭇거리다 휴대폰 속 폴더를 열어 보여주는 몇 장의 지저분한 사진들. 지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의 손끝이 스케치북을 건드렸다. 스케치 몇 장이 튀어나와 있었다. 지수는 낚아채듯이 스케치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건요?” 지수가 물었다.

“그냥 학교 과제인데요? 일본 전통화 스타일로 그리기.”

그녀는 무심히 스케치북을 열었다.


먹물 번짐이 살아 있는 산수화, 벚꽃, 금빛 잉어. 그러나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메타버스 전용 폴리머 재질* 스케치북이라 - 얼굴에 마스크처럼 쓰면 이모티콘 이미지와 얼굴의 표정 센서를 그대로 전달해 주는 메타버스 마스크에 자주 사용한다 - 전통의 질감이 살아있으면서도, 빛을 받으면 디지털 머티리얼로 변환된다. 붓 터치의 번짐이 3D처럼 깊이감을 만들고, 색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폴리머 재질 - 2030년대 초반 패션계를 장악한 페이스 마스크.


지수는 그 순간, 그 그림의 가치를 바로 계산했다.

203X 년, 이런 아날로그 재현은 드물었고, 대중은 그 희소성을 갈망했다. 이런 스타일은 무한 복제해서 메타버스 전역에 퍼뜨릴 수 있었다.

그는 화면을 향해 농담처럼 말했다.


“이 그림 한 장이면 네가 원하는 팔로워 부스트 10번은 살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그녀를 보며 덧붙였다.


“한 번 거래하면, 영원히 그쪽이 그린 이 그림에 이름이 안 남는 건데… 이해했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아요.”


스캐너 빛이 그림 위를 천천히 훑었다. 스타일 분석, 벡터 변환, 데이터 라이브러리 업로드까지, 1분도 안 걸렸다.

스캔이 끝난 파일은 자동으로 거래 서버로 전송되기 전, 0.5초간 그의 개인 서버를 거쳤다.

모니터 구석의 조그만 폴더 아이콘이 깜빡였다. ‘ART_LOG_211’.

그는 이미 지수의 개인 서버에 저장된 파일을 슬쩍 확인했다.


“한 시간 뒤부터,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 알고리즘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조정해 놨어요. 오늘 밤 스트리밍 뷰 숫자는 늘어날 겁니다.”

딱 한번, 듣기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 줄 거라는 학생은 급히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가게를 나섰다.




스트림 화면 속 그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었다.


하지만 화면 밖의 그는 한 손으로 셔터 틈새를 닦으며, 골목 건너편을 바라봤다. 비에 젖은 AR 광고판이 깜빡이며 로딩을 끝내자, 방금 스캔한 그림이 디지털 현수막으로 변했다. 금빛 잉어는 대기업 로고 아래 유영했고, 산수화 속 강 위에는 아이돌 홀로그램이 춤을 췄다. 그는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수는 카메라를 보며 “세상 진짜 빠르죠?”라고 웃었지만, 현실에서는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메타버스 안에서 이 그림은 이제 수천 개의 NPC 의상과 배경에 입혀질 것이다. 벚꽃은 온라인 결혼식장의 천장에, 강물은 카지노 로비의 벽에, 금빛 잉어는 저렴한 복권 광고 속에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남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트리밍을 끄고, 조용히 앉았다.

시선이 계산대 뒤편 선반으로 향했다. 거기엔 라벨이 붙은 데이터 드라이브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VOICE_088’, ‘DREAMS_094’, ‘ART_210’… 그리고 방금 추가된 ‘ART_LOG_211’.


그는 손끝으로 스크린을 가볍게 쓸었다.

폴리머 시트의 감촉이 사라진 자리에서, 대신 사라진 어린 예술가 -또는 꿈나무였던 누군가- 작품의 무게가 손끝을 눌렀다.


그 무게가 죄책감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또 하나의 기록을 손에 넣었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건지는…

그는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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