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 수준의 프랑스어로 식당 서빙 알바를 했다. 가끔 전공 지식을 써먹으려고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웹 디자인, 기획 알바도 했지만, 안정적인 수입은 돌솥비빔밥을 나르면서 벌었다.
점심시간 서빙을 담당할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직장 동료들과 식사하며 미팅하는 프랑스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전문 지식을 가지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생활. 돌솥비빔밥 대신에 기획 아이디어가 담긴 노트를 들고,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다가 접시도 몇 개 깨 먹었다.) 그래서인지,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을 때는, 직장인을 고집하며 구직활동을 했다.
운 좋게, 런던에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 취직해서 그토록 고집하던 9 to 5 직장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메일 서명에 APAC 마켓 분석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이 회사에서 3년 동안 trainee, junior, mid-weight, 그리고 시니어 문턱까지 갈 뻔했다.
첫 직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잠깐 대학원에 갔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나는 다시 직장인의 생활에 자석처럼 끌려갔다. 전혀 다른 분야로 커리어 전환을 했지만, 누군가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직장러로 돌아갔다.
워킹홀리데이가 그냥 커피라면, 외국에서 직장 생활은 티오피 같다. 찐하고 깊은 맛의 생활을 한지 어느새 6년.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달려온 런던 직장러의 생활을 돌아보기로 했다.
안정적인 생활의 디딤돌
런던은 정말 비싼 도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돈이 든다. 먹고, 자고, 씻고,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게 모두 돈이다.
회사에 다니면, 매 달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 안정적인 수입은 비싼 도시 생활의 달콤한 영양제 같다. 해외 생활의 어려움과 답답함으로 고생할 때, 조금씩 모아뒀던 월급으로 훌쩍 유럽 여행을 가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가끔 서프라이즈 용돈도 보낼 수도 있다.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을 뿐인데,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파운드를 보면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에 파운드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영국에서 첫 월급을 받은 날부터 한동안 환율 계산을 하면서 계속 배가 불러갈 통장을 상상하며 미소 짓곤 했었다.
야근을 철저히 지양하는 영국 회사 문화에 익숙해지니까, 한국에서 야근하다가 빼앗겼던 저녁 시간도 돌아왔다. 칼같이 정시 퇴근한 후에, 미술 학원도 다니고, 글쓰기 수업도 받으면서 취미 생활에 투자했다.
워라밸의 판타지
바다 건너 산 넘어 떠난 워홀에서까지 직장러를 고집할 거면 뭐하러 한국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굳이 영국에 갔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국에서 직장인이 된다면, 뭔가 외국 어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유럽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 한국에서 귀가 따갑게 듣던 ‘워라밸’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싶었다.
영드를 보다 보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유럽 직장인들은 아침 10시쯤 카페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신문 좀 읽다가, 느긋하게 출근해서, 샤방하게 동료들과 아침 인사할 것 같았다. 크로와상 하나를 베어 물면서 이메일을 체크하고, 아침 미팅에 11시쯤 갔다가,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솔직히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유럽의 직장러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
파리에서도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으면서 떠들던 회사원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유럽 회사에서 일하면 웃으면서 살만큼 일이 할 만 한가? 슬그머니 기대를 했었다. 비슷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판타지는 깨졌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주어진 업무 시간 안에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드라마에서도 보던 하하 호호하는 시간들은 실제로 일하는 시간의 1%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