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게 참 어렵다.
현생에서도 자기 소개하는 것도 어려운데, 5월 16일 시작하는 <NFT 빌라>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 영상에 4초짜리 작가와 작품 소개하는 영상을 추가하게 됐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누구라고 소개해야 할지 막막하다.
작가 소개, 왜 어려울까?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잘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특히 자신을 감히 작가라고 할 수 있냐는 질문 앞에서 계속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 소개’라는 것이 부담된다. 그런데 왜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몰아붙여서라도 답을 찾고 싶으니까.
아무리 짧아도 내가 어떤 세계관을 가진 작가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면 아무도 안 해준다. 그러니까 작가라고 자신을 인정하려면 소개하는 과정은 꼭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거다.
작품 소개는 길어서 문제다.
이번엔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초안으로 작성했던 자기소개와 작품 설명. 혹시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작가가 될까 봐 영어도 함께 적었다. 김칫국은 언제나 벌컥벌컥 제멋대로 들어가는 편이다 :)
작가 이름: Rumie Blue (루미블루)
작가 소개: Rumie Blue is a storyteller and NFT artist based in London. (루미블루는 스토리텔러이자 NFT 아티스트로 런던에서 활동 중입니다.)
작품 제목: #5. To be a family (#5. 가족이 된다는 것)
작품 소개: We travel the world to plant our roots, grow bigger and stronger. Make ourselves feel belonging. To be at home, not as strangers but as family. (강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살 곳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행 중입니다. 우리 존재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까지.)
4초 안에 사람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 수는 예상외로, 정말, 정말 정말! 적다. 그래서 계속 수식어와 형용사를 줄이는 과정을 통해 설명을 짧게 만들어야 했다.
작품 소개를 고쳐 쓰다가, 문득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봤던 날이 떠올랐다. 수련 앞에서 작품 소개를 읽었던가? 아니다. 그냥 작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그림.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수련을 나는 봤고, 작가가 느끼던 감정을 같이 느꼈다. 아무런 글도, 말도 없이, 모네는 그 방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수련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All I did was to look at the universe showed me, to let my brush bear witness to it.
-Claude Monet
다시 내 작품 소개 초안을 봤다.
미숙한 실력으로 미처 그림에 담아내지 못한 것들을 말로 설명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글이 거기에 있었다.
캔버스 대신 입과 키보드로 열일하는 작가, 갈 길이 구만리다. 오랑주리에서 보았던 수련처럼 작품 소개를 읽지 않아도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때까지 더 많이 그리고, 연습해야지.
여차저차 태어난 4초짜리 소개 영상
NFT 아트 작품 전시회에 제출할 영상에 담은 소개글. 작품을 통해서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내길 바라면서 과감히 작가 소개 부분을 삭제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핵심만 간단하게 적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 전시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4초짜리 영상이 1분짜리 쇼릴 (Showreel)이 되다
<NFT 빌라> 전시 장소가 2곳으로 확장되면서, 더 많은 작품을 영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4초짜리 영상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만들었는데, 1분 안에 지금까지 오픈씨 (OpenSea)에 민팅한 9개의 작품을 모두 담으려니까 머리숱이 남아날지 모르겠다ㅜ
짧은 글로 정말 하고 싶은 말만 전해야 했던 4초짜리 소개 영상과 달리, 1분 동안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내가 작업한 작품들이 어떤 것인지 관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쉿, <NFT 빌라> 전시 장소와 일정은?
- 이태원, 빌라 해밀톤 (VILLA HAMILTON) : 5/16 ~ 5/29,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15 2층
- 인사동, 코트 (Kote) : 5/16 ~ 5/26,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