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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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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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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5

일러스트 : 쉬엄쉬엄 by 최집사



스승의 날 겸 부처님 오시는 날이다. 아침에 라디오를 들으니 문득 요즘 스승들이 부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날이면 유독 새벽 일찍 잠을 깬다. 오늘도 5시에 눈이 떠져 냥이들과 한 시간을 딩굴거리다 일어났다. 반려인은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자고, 고양이들과 나는 루틴에 맞춰 씻고 먹고 설거지를 했다. 날씨가 좋아 이불 빨래를 돌릴까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내린다고 하니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보니 일기예보가 거짓말 같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오늘의 이불빨래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어제 잘못 사 온 대량의 오이 중 반을 꺼내 피클을 만들었다. 큰 유리병에 담을 까 하다가 먹기 쉽게 작은 용기로 4명을 만들었다. 스파클링 허브와 월계수잎을 넣고, 차로 우려먹는 비트도 한 조각씩 넣으니 색깔이 훨씬 고와졌다. 피클병을 냉장고에 옹기종기 넣어두고 비로소 여름이 도래했음을 느꼈다.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 든든한 마음이었다. 콩국수, 메밀국수, 열무비빔밥, 수박, 옥수수, 감자, 복숭아, 메실청, 미숫가루, 보리차… 소나기, 무지개, 매미소리… 이번에도 무덥고 치열하겠지만 어떻게는 아름답게 기억할 준비를 해야겠다.



반려인 핸드폰의 강화필름을 교체해 주고 베이글 샌드위치와 커피를 얻어먹었다. 모처럼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마음껏 냥이들과 나 잡아봐라도 했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도 다녀왔다. 오후엔 불려놓은 쌀을 안치고 지난번 만들기로 한 가방 패턴들을 재단했다. 식탁 위에 원단을 펼쳐놓고 자르고 있으니 문득 17년 전 대학 시절이 소환되었다. 그땐 졸작 준비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좋아서 찾아하는 일이 되니 다행이다 싶다. 내가 배운 것들로 거창한 걸 하지 못하지만 스스로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만족스럽다.



쿠쿠씨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한다. 냉동밥 소분해 놓고, 산책을 좀 다녀와야겠다. 새벽에 일찍 깨어 그런지 졸음이 쏟아진다. 잡화점에 가서 필요한 것들 좀 사고, 동네 산책하는 강아지들 구경도 좀 하고 와야겠다. 캣타워에서 잠든 꾸리를 보니 이대로 있다간 나도 저기 올라가 잠들 거 같다. 어릴 때 외삼촌댁에서 물려받았던 2층 침대가 딱 저 높이였던 거 같다.



https://www.instagram.com/reel/C6_KsPsP847/?igsh=MXJyaXdwZmsxcGU0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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