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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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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22. 2024

D + 8

20240522 푸릇푸릇

일러스트 : 계란 프라이 by 최집사



 늦잠을 잤다. 피곤했는지 냥이들이 깨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려인은 내가 새벽에 냥이들이 시끄럽게 할 때마다 짜증은 낸다고 했다. 내가? 기억에 없으니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정말 그렇다면 미안한 일이니 아침마다 사과를 해야겠다.



 침대를 정리하다 지난번 새로 산 낚싯대가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 걸 발견했다. 누가 그랬는지 심증은 가지만 하루 동안 자수를 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꾸리가 자꾸 눈을 피하는 게 도주의 위험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영장을 발부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 젤리에 지문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전에 있던 장난감을 연결해 놀아주었다. 룽지는 반기는 분위기였고, 꾸리는 선뜻 즐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번에도 모른 척해야겠지…



반려인의 겨울 이불을 빨아 널고 마트에 다녀왔다. 그동안 모아 둔 비닐과 장바구니를 챙겨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예전엔 천으로 된 다회용 주머니를 애용했었다. 밀폐력도 떨어지고 보관도 어렵고 세탁도 번거로워 요즘은 한 번 받은 비닐을 여러 번 재사용하고 있다. 지퍼백의 경우 떡이나 잡곡, 미역 등을 살 때 포장된 것들을 씻어서 재사용한다. 최대한 비닐과 플라스틱을 사용을 줄이려고 하지만 그것이 주는 유용함과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대신 여러 번 사용해 그 쓰임을 다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슨해져 있었다. 무성한 초록을 바라보니 다시금 마음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첫 모기가 물렸다. 정확이 이틀 전에 물렸는데 매일 같은 시간 주기적으로 가렵다. 비눗물도 묻혀보고, 십자가도 그어봤지만 별효과가 없다. 이렇게 매일 샤워하는 계절이 온 것을 깨달았다. 여름이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지만 풍성한 채소들을 보면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가지, 오이, 토마토, 애호박, 열무… 그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자전거 바구니에 한가득 싣고 와 오후 내내 씻고 소분하고 정리했다. 상해 버리는 없도록 부지런히 요리해 먹어야지.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냥이들과 침대에서 꽁냥 거리다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날이 더워지니 늦잠, 낮잠, 시체 놀이로 피로를 푼다. 냥이들의 텐션도 봄가을만 못하니, 시원한 곳에 드러누워 있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 새벽 발광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재우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집사도 같이 누워 뒹구는 꼴이 되었다. 뭔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면이 아닌 게 감사할 일이고, 잠으로 기력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건 복이라면 복이다. 죄책감 가지지 말고 피곤하면 30분 눈 붙이는 걸로…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Q7ayuvvD9/?igsh=ajE4bGo0ajdrM2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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