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집사 May 21. 2024

D + 7

20240521 초록초록

일러스트 : 라꾸라꾸집사 by 최집사



5시 한 번, 6시에 한 번 깼지만 최종적으로 6시 반에 일어났다. 냥이들이 집사의 생존을 확인할 때마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해 주었지만, 나 역시 본능에 충실한 존재라 가볍게 외면할 수 있었다. 양치를 하고 나와 냥이들 밥을 챙기고, 마지막 남은 된장국을 끓여 반려인의 아침도 차려 주었다. 라디오에선 하루종일 알람처럼 부부의 날을 고지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이 오전을 보냈다.



 요즘 제사도 한꺼번에 지낸다던데… 마음 같아선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기타 등등 가족 관련 기념일을 한 데 모아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인정받고 싶는 마음과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 중 어느 것이 절실할까… 시시콜콜 모든 걸 자세히 알 순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마음의 낙차가 크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한 날 한 시, 다 같이 공평하게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고 효율적이겠다 생각한다. 눈부신 5월이 보너스 없는 명절 살이가 되지 않기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누군가가 소외받지 않기를, 가정의 달이 가난의 달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 즐겨보는 노르웨이 유튜브에서 오트밀 쿠키를 만들어 먹는 걸 보고 맛있어 보여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오크밀과 바나나와 시나몬 파우더만 있으면 되니 개량이나 설거지 부담 없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꿀 대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악성 제고 생강청을 좀 넣었다. 초코칩 비주얼의 건포도도 몇 알도 넣으니 그럴듯한 쿠키 반죽이 완성되었다. 수납장 깊은 곳에서 아끼는 고양이 틀을 꺼내 쿠키를 찍어 오븐에 구웠다. 뭔가 귀여운 노르웨이 할머니가 된 거거 같고, 오래 전 꿈을 이룬 거 같았다. 어제의 카레향에 이어 오늘은 시나몬향이 온 집안 가득했다. 정성껏 내린 콜드브루 라떼도 홀짝이며니 숨어있던 오늘의 보물을 발견한 마음이 들었다.



 아프기 전에는 편의점 과자나 젤리, 아이스크림 같은 게 일상의 낙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들을 대체할 건강한 간식들을 찾고 만드는 게 낙이 되었다. 물론 예전처럼 도파민을 한껏 끌어올리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지금은 지금대로의 슴슴하고 아기자기한 만족이 있다.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결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무가 나이테를 입듯, 어떤 계절을 잘 보내고 나면 행복의 폭도 조금 넓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반려인의 여름 신발 깔창을 사러 잡화점에 다녀왔다. 나간 김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 공원 산책도 했다. 캠핑이 제철이라고, 지금이 1년 중 딱 놀기 좋은 날이라고 하던데, 더 늦기 전에 쏜살같은 계절을 만끽하고 싶었다. 자전거에 강아지들을 태워 마실 나온 할아버지들을 보며 한동안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 도그 데이즈가 떠올라 마음이 몽글거렸다. 바구니 속에 능숙하게 앉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닥스훈트를 보니, 잠시 미래의 반려인을 그려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이런 설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릴스 영상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ORLQ0vUT5/?igsh=ZzFjeG9kOXkzcnRz



매거진의 이전글 D +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