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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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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24. 2024

D + 9

20240524 덥덥

일러스트 : 고양이 쿠키 by 최집사



 새벽에 반려인이 모기 잡는 소리에 깼다. 키노가 배가 고팠나…? 계속 윙윙 거린다는 그에게 차마 이름을 붙여주었다 말하진 못했다. 뒤척거리는 몸짓에 식사를 마치지 못한 모기는 내게로 날아왔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 약간의 시주할 마음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손이 올라가는 바람에 녀석도 달아나고 잠도 달아나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냥이들 밥 챙기고, 물 챙기고, 화장실도 씻어 새 모래까지 깔고 나니 그간 못 보던 땀방울이 인중에 송골송골 맺혔다. 이런 집사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룽지는 ‘이 땅 다 내 거’라며 곧바로 들어가 큰일을 봤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어제 읽었던 브런치북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오는 걸 내보내는 아이에게 따질 일은 아니었다. 반듯하게 틀어내는 똬리에 감탄하며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줄 수밖에 없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청소기도 돌렸다. 돌렸다는 표현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버리고 싶은 화자의 심성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날이 더워지는 관계로 하루에도 대여섯 번 훅훅 열이 뻗친다. 사우나에 앉아 있는 거처럼 목덜미, 겨드랑이, 사타구니, 오금 관절 마디마디마다 땀샘이 펌프질을 한다. 올해는 해수면 온도가 더 높아져 이상기후가 심해질 거라고 하던데 이제 내가 사는 세상엔 이상하지 않는 게 없다. 6월쯤 서큐레이터를 꺼내려했지만 이미 절실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아직까지 전기장판을 켜고 자는 반려인을 보면 이상한 건 당연한 가 싶어 진다. 그러니 침대를 두 개로 바꾼 건 잘한 일 같다.



여전히 입맛은 없지만 국수를 삶고 샐러드도 만들어 먹었다. 여전히 입맛은 없지만 요거트도 말아먹었다. 여전히 입맛이 없지만 빙수가 먹고 싶어졌다. 주말엔 팥내음(동네 빙수가게)에 가야지. 이쯤 되면 입맛이 없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내 몸은 왜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그토록 증오하는 여름이 오고 있으니 매사에 삐뚤어진 마음이 생긴다. 브루마블 게임처럼 계절 패스권 황금 열쇠가 걸렸으면 좋겠다.(그런 게 있었나..) 유아 모드가 되어버린 육신을 달래려 뽀로로 틀어주듯 겨울 나라 영상을 보여주었다. 귤, 목도리, 난로, 크리스마스… 이미 마음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



땀이 날 땐 헥헥거리다가 식을 때가 되면 헤헤 거린다. 씻거나 닦기에 앞서 바람결에 땀방울이 날아가는 기분이 좋다. 한결 가벼워진 무게?덕에 덩달아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극한의 아픔이나 고통 뒤에 따르는 행복과 만족이 더할 나위 없다곤 하나 이왕이면 큰 기복 없이 잔잔하게 살아가고 싶다. 거창한 걸 하지 못해도, 많은 걸 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은 마음이면 좋겠다. 부디…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reel/C7WH2OcPESN/?igsh=MXFsenZ4cWV4bmNi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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