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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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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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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7 시원 선선

일러스트 : 구름냥 by 최집사



토요일 새벽 05시경, 반려인이 키노(우리 집 상주 중이었던 모기)를 제거했다. 한데 사체는 발견하진 못했다. 이번에도 귀전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에 셀프 싸대기를 날렸다던데 그 뒤로 잠잠해진 걸 미뤄 추측할 뿐이다. 아침에 일어난 그가 뺨이 얼얼하다고 했다. 과거 잠결에 몇 번 봉변을 당해본 사람으로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동시에 그 희생?에 고맙다고 했다. 동시에 푸드덕푸드덕 방귀처럼 새어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모기 소리가 들렸다. 키노의 혼령인가? 용케 살아남은 것일까…? 어쩌면 청약 대기순처럼 집 밖에 모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한 마리씩 입주하는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도 반려인을 따라 몇 번의 셀프 싸대기를 시도했다. 자기애가 강한 몸이라 효과는 미비했지만 딱히 일어날 여력도 없기에 수차례 자가 펀치를 날렸다. 옆에서 자고 있던 냥이들은 성가시다는 듯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노려봤다. 개였다면 나를 지켜줬을까…? 요즘 아침저녁으로 냥이들에게 특훈을 시키고 있다. 낚시 놀이를 할 때 입으로 윙윙 모기 소리를 내는데 이상하게 그럴 땐 또 세상 그런 히어로가 없다. 실전에 약한 아이들이구나 합리화하며 자기 위로할 뿐이다.



주말엔 옆 동네에 있는 한살림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왔다. 평소 집순이 모드로 지내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데이트 같은 그 시간이  환기도 되고 추억도 되고 소중하기 이를 때 없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바쁜 반려인에게 어디 가자 하는 것도 미안하고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먼저 물어봐주기도 하고, 내가 미리 물어볼 때도 있고, 혹은 꼭 둘이 아니더라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려고도 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스투키들이 커서 옮겨심기를 했다. 곧 죽을 거 같았는데 용케 겨울을 견디고 살아 주었다. 저녁을 먹고 새 화분을 꺼내 두 개씩 나눠 심고 트윈스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삐쩍 말라버린 줄기가 안쓰러워 물을 주니 금세 쨍쨍하게 생기가 돌았다. 냥이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통에 베란다에 두기 두렵지만 해 드는 쪽으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돌보고 있다. 5월인데 여름이라고 온갖 짜증을 부렸는데 그래도 얘네들한테는 축복인 거 같아 마음이 좀 누구러졌다. 더하고 빼고 한 그릇, 결국 채우는 건 스스로의 몫인가 보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a_fVtt0Le/?igsh=MTFzM2U5eXJuZXpx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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