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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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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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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5월 다운 공기

일러스트 : 장화 신고 싶은 고양이 by 최집사



 아침에 반려인이 출근하고 급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꾸리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디어 손잡이 돌리는 법을 터득한 것일까… 당황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쳐 내보냈지만 한편으로 첫걸음마를 본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름 밤마다 무던히 연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엔 노크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생각하며 미소가 나왔다. (과연 하실까… )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고양이와 사는 건 무궁무진한 집사가 되는 기분이다. 매일 작은 시도에도 파도처럼 감동받고, 다채로운 추억들도 차곡차곡 적립할 수 있는 능력을 비로소 가지게 되었구나 생각한다.



 대학 병원에 예약 확인을 하러 전화를 했다. 바쁜 시간대를 피해 연락을 했지만 이번에도 6명의 대기를 지나 두 번의 ARS를 간신히 통과해 담당학과와 연결되었다. 요즘 대학 병원 진료는 대기업 취업 면접보다 어렵다. 겨우 통화된 김에 예약을 비롯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려 했지만 담당자는 다음 진료 때까지 기다리라며 바쁘니 빨리 끊어야 한다고 눈치를 줬다. ( 현실은 진료실에 가도 딱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진 않는다.) 매번 정말 바쁘구나 생각하며 마음 상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바쁘지 않은 날이 있을까 싶다. 키오스트로 하던 수납은 얼마 전부터 아예 어플로 하라고 안내까지 해주던데... 돈 받는 일은 일사천리 최첨단으로 앞서나가면서 상담과 진료, 치료는 그러지 못하는 거 같아 아쉽기만 했다.  결국 고구마 같은 시스템이 치료에 소극적인 바보 환자로 만드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베란다에 협탁에 얼마 전 옮겨 심은 스투키 화분을 놔두었는데 작은 냥이 룽지가 공격을 가했다. 이쑤시개를 닮아서일까, 무슨 양치껌 씹듯 잘근잘근 씹어버렸다. 황당한 마음에 룽지를 훈육하는 사이 이번에는 꾸리가 올라가 2차 공격을 시도했다. 이럴 땐 어찌나 연합이 잘 되는지 요즘 부쩍 세트로 말썽을 부린다. 결국 신속히 화분을 들어 빨래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졸지에 교무실에 불려 온 학부모 모드로 이리저리 스투키의 상태를 살피며 사과도 했다. 협탁 위에 나만의 작은 정원을 꾸미고 싶었는데… 결국 냥이들이 접수해 그들의 관제탑이 되고 말았다. 화분 돌보지 말고 좀 더 자신들에게 신경 쓰라는 뜻일까.



스투키 사건의 응징과 더불어 좀 더 사랑을 베풀자는 의미에서 오전에 집단 양치를 시행했다. 주사 맞으러 온 아이처럼 온몸을 비트는 근육질 냥이에게 온갖 칭찬을 퍼부으며 어르고 달래고 사정사정해 진행할 수 있었다. 애정이 고픈 작은 냥을 내심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다 수월하게 잡혀 같은 꼴을 당했다. 억울하다고 토로했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공범묘를 불지 않았다. 내친김에 저녁에는 발톱을 깎아야 하는데… 이것도 꽤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오늘 한꺼번에 그동안 묶은 행사를 진행하는 건 약간의 화분 돌보는 마음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gRXAXPJZO/?igsh=MXdnc2d6anZucXAx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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