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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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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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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1 화창 쨍쨍

일러스트 :  빨래도우미 by 최집사



병원에 다녀왔다. 4주에 한 번씩 맞는 호르몬 주사도 맞고 방사선종양외과에 가서 문진도 받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나와 달리 반려인은 왠지 들뜬 분위기였다. 그러려니 했지만 마냥 덩달아 마음이 좋아지진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신경 쓰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다. 주사실에서 대기를 할 땐 반려인에게 놀러 온 거 아니라고 짜증까지 냈다. 나를 위해 분위기를 띄우려는 거라면 미안했지만, 내 마음과 달리 해맑아 보이는 그에게 왠지 모른 섭섭함을 느꼈다. 괜히 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지금이 여행 가는 길이라면 나도 웃고 설레었겠지. 결국 이 상황에 너무 휘둘리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다독였다.



 새벽에 악몽을 꾸다 우측 종아리에 쥐가 났다. 일어나서 보니 작은 냥 룽지가 내 발을 베고 자고 있었다. 꿈속에선 소리를 엄청 질렀는데… 실제로도 비명을 질렀는지는 모를 일이다. 반려인도 내색 없고, 냥이들도 피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목상태가 괜찮으니 지난밤은 고요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병원에 소환될 때마다 예민해지곤 하는데 결국 이번에도 힘없던 어린 시절로 소환되는 꿈을 꿨다. 그래도 깨고 나면 호위무사처럼 냥이들이 곁에 있고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지켜봐 주니 안심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실제로 전생에 나를 지키던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낭만적인 상상에 잠기기도 했다. 어찌 보면 밥 주고, 물 주고, 놀아주고, 꼬박꼬박 화장실 청소해 주는 집사의 안위를 살피는 게 그들의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많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릴스영상을 올릴 때 날짜를 기록하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어제 올린 릴스가 오늘 날짜로 올라가 있다. 한동안 어리둥절하다 문득 미래를 다녀온 게 아닐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내 시간이 하루 더 추가된 걸까... 요즘 판타지 드라마를 과잉 시청했더니 상상력이 풍만해졌다. 조만간 초능력자가 되었다 허언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간 이동에 이어 공간 이동까지 가능하다면 매일마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집 앞 슈퍼 다녀오듯 여행하고 싶다. 현실은 이런 달콤한 상상을 하며 유튜브를 틀며 주문을 욀 뿐이지만…

 모빌리코푸스!!



  1년 가까이 고민하다 주문한 소파가 도착했다. 혈기 왕성한 냥이가 둘이나 있는 관계로 소파를 바꾸는 게 부담되었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새 소파가 놓인 거실을 바라보니 잘 어울리는구나 싶으면서도 좀 어색한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냥이들도 처음엔 경계를 하더니 금세 얼굴과 엉덩이를 문질러 영역을 표시했다. 나도 따라서 잠시 누워 뒹굴거렸다. 역시 익숙한 체취가 묻으니 훨씬 정이 갔다. 전에 있던 소파는 많이 닳았지만 혹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당근에 내어 놓고 메모를 붙여 내다 놓았다. 정든 시간을 함께 떠나보내는 거 같아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금 새롭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채워야지 다짐했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7oduRLP5Pu/?igsh=cmNuMzR0Ym04am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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