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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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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01. 2024

D + 30

20240701 흐리고 더움

일러스트 : 집사놀이 by 최집사



드디어 7월이 되었다. 평년보다 조숙했던 6월을 겨우 보내놓고, 비로소 제대로 된 여름을 맞이했다. … 알고 있다, 본격적인 더위는 이제 시작이라는 걸. 그럼에도 희망을 쥐어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이미 여름은 반이나 지났다. 이 계절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놓고 싫은 티를 내기엔 이미 누리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아오리 사과 같고 뉴진스 텐션 같은 이 여름의 활기를 어떻게든 즐겨보자 다짐한다.



좋아하는 계절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지난 계절을 꼭꼭 곱씹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계절을 향에 가고 있다. 나의 계절은 아무래도 겨울인 거 같다. 매일밤 산타 마을과 크리스마스와 삿포로의 하얀 눈을 떠올린다. 세상 모든 겨울을 경험하고 싶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서진이네(아이슬란드 촬영)가 도움이 된다.



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따라 털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곧장 브러시를 가져와 빗겨주니 답가로 오르골 같은 골골송을 불러주었다. 주말사이 내린 눈 아니, 털이 집안 곳곳에 모여있다. 청소기를 안 돌릴 수가 없다. 설거지를 하고 장마로 쿰쿰해진 행주도 삶았다. 오전 집안일을 하는 사이 시종일관 추운 겨울을 상상했지만 이상하게 땀이 흘렀다. 동시에 찐빵이 먹고 싶고, 고구마 스콘도 먹고 싶고, 단호박 수프도 먹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겨울이 아니라 겨울 음식을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만드는 법을 찾아보다 이미 만들어 먹은 기분이 들었다. 오버말고 베이킹은 가을 즈음 하는 걸로…


 


 주말에 반려인이 본가에 가 텃밭채소를 잔뜩 얻어왔다. 고추, 양파, 오이… 열무김치도 얻어왔다. 몇 통째 열무김치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머리카락이 곱슬곱슬 열무처럼 자란다. 채소들을 손질해 놓고 기력이 소진하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계란 굽는 것도 건너뛰고, 쌈장 만드는 것도 건너뛰고, 맨 고추를 그냥 씹어 먹었다. 맵지도 않고 쌈짱 따윈 필요 없는 맛이었다. 비빔밥 한 양푼에 고추를 몇 개나 먹었는지 모른다. 그 덕에 굵고 튼실한 머리카락이 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잠시 마트에 다녀왔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길에 사람이 없는 걸 인지하고 덥다는 걸 느꼈다. 단시간 볼 일을 보고 돌아오자마자 찬물을 뒤집어썼다. 상쾌해진 기분으로 베란다 햇살이 아까워 샤워 타월을 삶아 널었다. 때맞춰 자다 일어난 냥이들이 간식을 독촉했다. 전용 종지를 꺼내 하트 모양으로 츄르를 짜주니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얘들 먹방을 감상하다 나도 허기가 져 간식을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서 천도복숭아와 바나나를 꺼내 요거트를 만드는 사이 다시 인중에 땀이 맺혔다. 조용히 선풍기를 켜고 캐럴을 흥얼거렸다. 에어컨 바람은 뼈가 시리고, 껐을 때 습해지는 기분 때문에 잘 켜지 않았는데, 조만간 별도리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릴스로스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30pbUvNAw/?igsh=MXhoN2dmNzBhZTEz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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