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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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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덥고 흐리고 비

일러스트 : 집사조식 by 최집사



 늦잠을 잤다. 지난밤엔 세 번 정도 깬 거 같다. 그때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주문을 욌다. 눈앞에 피어오르는 입김, 벙어리장갑, 폭설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했다. 동시에 민달팽이처럼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어긋나 있던 선풍기 영점을 맞췄다.



냥이들은 연신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대체 집사들이 잠들면 무얼 하는지 궁금했지만 일어나 참견할 기운은 없었다. 지나가던 룽지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곁으로 와 확인을 했다. 발가락에 얼굴을 비비고 강아지처럼 여기저기를 냄새 맡았는데 촉수 같은 수염 가닥들이 쉼 없이 간지럽혀 하마터면 죽방을 날릴 뻔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혼신의 연기로 몸을 돌렸다.



오전에는 큰맘 먹고 장아찌를 만들었다. 계란을 삶고 버섯을 볶고 간장물까지 끓이는 사이 나의 육신도 장아찌가  되었다. 오늘따라 계란 껍데기는 왜 이리도 안 벗겨지는지  나의 인내심을 시험케했다. 싱크대에 기대 고개를 숙인 채 ‘이런 경험 처음인 거 알지만 부끄러울 거 없다’고 나만 믿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도 지껄였다.



온 집안을 장아찌향으로 가득 채우고 그제야 시원한 커피우유를 마실 여유가 생겼다. 지친 몸으로 동선을 최소화기 위해 컵을 냉장고로 가져갔다. 마지막 남아있던 콜드브루를 따르고 두유까지 세팅해 나오는 순간, 발가락을 접질러 스탭이 꼬이는 바람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따라오던 꾸리가 잡아주길 바랐지만 끝내 지만 살겠다고 주행랑을 쳤다. 조용히 걸레를 가져와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았다. 두 냥이들은 먼발치서 이 사단을 예견했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은 물을 하도 마셔서 올챙이가 된 거 같다. 아침엔 녹차, 낮에는 매실차, 오후엔 작두콩차… 그것도 여러 번 우려먹으니 하루에 족히 2리터 이상은 마시게 된다. 그에 비례해 땀도 많이 흘리고 화장실도 자주 간다. 덩치로 보나 마시는 양으로 보나 올챙이보단 하마에 가깝지만 스스로 작고 귀엽고 싶다는 욕망은 버릴 순 없다. 요즘처럼 비가 올 땐 기깔나게 노래도 부르고 싶고 옥상까지 높이뛰기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럼에도 아직 때가 아니다 자중하고 있다. 조만간 뒷다리도 나고 앞다리도 나면 쪼쪼댄스를 추며 8옥타브를 넘나들어야지. 그때쯤 되면 이 지그지긋한 장마와 폭우와도 친해져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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