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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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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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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9 오락가락 폭우

일러스트 : 이완자세 by 최집사



 장마의 절정을 지나고 있다. 종이배에 고양이 두 마리를 태워 태풍 치는 바다를 지나는 기분이다. 비가 오거나 비가 올 거 같은 날씨는 울거나 울기 직전의 아이처럼 몸과 마음을 난처하게 만든다. 잘 모르는 아인데도 달래 주어야 할 거 같다. 아침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일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는 사이 거울 속 블로브피시와 자꾸 눈이 마주친다. … 달래주어야 할까.

 


이 와중에 꾸리는 사냥을 가야 한다고 했다. 원한다면 혼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칭찬봇인 집사와의 동행을 요구하는 터라 조용히 뒤를 따라야 했다. 그 뒤를 룽지도 조용히 따랐다. 인간으로 치면 2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녀석은 칭찬과 박수와 무한 반복을 좋아한다. 세 개다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씩 영양제 같은 우쭈쭈를 먹고 자란 아이는 이제 송아지만 한 엉덩이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틈만 나면 머리카락을 비롯한 손가락, 발가락, 집사의 말초신경을 노린다. 반려인은 안 건들고 나만 노리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퉁퉁 부어 쫀득쫀득 하리보가 된 비주얼로 쓰러져 있으면 더더욱 입맛을 다시며 다가온다. 엄마 고양이인척 하악질로 응징해 보았지만 기라성같은 하품으로 받아칠 뿐이다.



 스트레스 풀 곳이 없어 그런가 싶어 스크래쳐를 좀 더 주문할까 했는데 찾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세상에 스크래쳐가 이리 많을 줄이야... 고양이들이 지구를 접수할 날이 머지않음을 느꼈다. 워낙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라 뭘 하나 사려고 하면 한참 찾고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뒤져도 완벽히 내 마음에 드는 건 또 없다. 찾고 고르고 비교하는데 점점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있던 게 좋고 쓰던 게 편하다. 한편으로 물건도 사람과 동물처럼 적응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단 걸 느낀다. 세상엔 트랜스포머같이 멋진 스크래쳐들이 넘쳐나지만, 또 그것들이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 집에 두고 쓰기엔 썩 내키지 않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기력이 달려 시원한 매실차를 타 마셨다. 본가에서 가져온 좋아하는 유리잔을 꺼내 직접 만든 코스터도 깔고 알사탕 같은 얼음도 동동 띄어 먹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진 않지만 괜히 재즈도 틀어놓고 싱크대에 기대어 바에 왔다는 상상을 했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네, 매실 온더락입니다.’ 유리잔 너머로 우아하게 그러데이션 된 색을 감상하며 우여골절 끝의 시큼 달콤한 하루를 돌아봤다. 그렇게 잠시나마 한여름의 낭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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