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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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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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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습하지만 햇빛

일러스트 : 반려가족 동반 카페 by 최집사



 새벽 3시 잠이 깼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제 루틴이 되었다. 화장실에 다녀와 엄지발가락으로 선풍기가 연결된 멀티탭을 눌렀다. 덩달아 사타구니 어디쯤에 자고 있던 룽지도 일어나 비몽사몽 눈을 비볐다. 베개를 정비하고 옆으로 누웠다 바로 누웠다 하며 자세를 고치는 사이, 꾸리도 소파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왜 하필 여기서 투닥거리는지, 정원초과가 된 소파에서 튕겨져 나온 몸뚱이는 조용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문어발을 뻗어 선풍기를 조준했다.



 김밥 놀이하듯 이리저리 몸을 굴려 식히는 사이 잠이 달아나버렸다. 집사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걸 감지한 꾸리는 다시 곁으로 와 인어공주인 척을 했다. 새벽 사냥에 동행할 마음이 없는 집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척을 했다.



반려인이 출근하고  젖은 수건과 속옷을 모아 삶고 냥이들 화장실 물청소도 했다.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 닫는 걸 깜박했는데, 이틈을 탄 냥이들의 피습으로 여기저기에 젤리 족적으로 도배가 되었다. 세리머니로 승모근을 한껏 부풀려 하울링을 하던 꾸리는 조용히 연행되었다. 따라 들어왔던 룽지도 공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냥이들 무게도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계속해서 집사의 손목을 담보로 귀여움을 충전받고 있지만 이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 든다. 하나씩 안고서 체중계에 올라가니 둘이 합쳐 족히 쌀 반 가마니는 된다. 어이없다는 표정의 아이는 장마라 습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습기에 털들이 묵직해진 거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고, 알람 맞춰 약도 챙겨 먹었다. 오픈런 대기하는 카페족처럼 먼발치서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룽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주문한 어묵꽂이(장난감)를 꺼내 안방으로 갔다. ‘손님 이쪽입니다.’ 쏜살같이 들어온 룽지는 사탕 같은 동공을 부풀려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젊음과 야생의 기운으로 똘똘 뭉친 파워에 중년 집사는 한 마리 가오리연처럼 질질 끌려다녔다. 발전기가 있다면, 그래서 저 아이의 에너지를 전기로 바꿀 수 있다면 하루종일 에어컨을 켤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상황을 직관하던 꾸리가 제차례를 알리는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레이저 포인터를 꺼내 바닥이며 벽이며 여기저기를 비추었다. 아이가 포인트를 잡을 때마다 진심어린 칭찬도 잊지 않았다. 격하게 움직이고 재빨리 손을 뻗을 때마다 두 배, 세 배 vip급으로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었다. 동시에 고양이 전용 닌텐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광란의 사냥으로 냥이들을 기절시키고 주방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냉장고에서 깍두기 같은 천도복숭아도 꺼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잠시 충전을 하고 그림을 끄적이다 세탁기 알람에 맞춰 베란다로 나갔다. 건조대 두 개를 펼쳐 테트리스 하듯 빨래를 널고 잠시 멍타임을 가졌다. 브런치 어플을 열어 이웃들 글을 읽고 이곳과 다른 일상들을 가늠해 보았다.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가난한 지금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매일 이렇게 양털구름처럼 고단하고 고양이 손톱만큼씩 행복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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