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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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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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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5 우기

일러스트 : 청소 도우미 by 최집사



 입술 위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 초복이지만, 동시에 행주 삶는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행주를 삶다가 행주가 될 뻔했다. 과탄산 소다 두 스푼을 넣은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고 양치를 다녀온 사이 거품이 넘쳐흘러 엉망이 되었다. 용암처럼 보글거리는 모습이 신기했던 룽지는 겁 없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가스불을 껐다.



강아지였다면 어떻게든 위험을 알렸을까… 자다 일어난 꾸리는 주방 쪽은 보지도 않고 밥을 먹으러 갔다. 삽질에 내성인 생긴 탓인지, 자책이 지겨워진 탓인지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물론 나에게.) 그저 냥이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 목숨 부지하려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화장실 정리도 하고, 행주도 삶고, 청소기도 돌리고, 채소도 씻어서 소분해 놓았다. 이 모든 걸 마치고 나니 그제야 구레나룻에 숨어있던 땀방울이 미끄러져 내렸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닌지라 마음도 갈팡질팡, 왔다리 갔다리 했다. 그럴 때일수록 본업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돈 받고 일하러 온 직원처럼, 자영업 하는 사장처럼 진심을 다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매실차를 타서 소파에 앉으려는데 이번엔 룽지가 안아달라고 팔을 뻗었다. 팔자 눈썹을 하며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으싸 하는 기합과 함께 들어 올린 아이는 내 바지의 허리춤에 발가락을 걸어 몸을 고정시켰다. 파리 끈끈이와 거기에 달라붙은 대왕 파리가 떠올랐다. 이런게 만유인력법칙일까. 녀석의 질량이 커질수록 나를 당기는 힘이 커질 거라는 행복하고 두려운 확신이 들었다.



 냥이들이 활성화되는 최적의 온도는 24도에서 28도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 그것도 공기 중 60프로 이상 습기를 머금는 우기에는 1도 내려갈 때마다 그 텐션은 수십 배가 된다. 이것은 에어컨을 켜기 두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격한 더위를 피해 시에스타를 떠올리는 집사와 달리,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사냥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촛불 시위를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평화적인 방법이기에 더더욱 치명적이다. 보드랍고 동그란 엉덩이로 정강이를 문지르거나, 보란 듯이 머리맡에 자리 잡고 윙크 따발총을 쏟아붓으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잠을 자도 꿈속에서 뜀박질을 하게 된다.



… 누구보다도 냥이들을 좋아하지만 귀찮고 힘든 면이 있다는 건 펙트이다. 이건 애인이나 가족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세상에 100프로 순금이 존재하지 않듯이, 내 사랑에도 약간의 불순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인내와 용기만이 진심을 증명해준다고 믿는다. 힘들지만 낚싯대를 들고, 귀찮지만 기꺼이 돕고,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렇게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기꺼이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일이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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