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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29. 2024

숨은 단골집 찾기

외식



외식을 잘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서 일을 관두니 집에서 밥 해 먹을 시간이 생긴 탓도 있다. 벌이가 줄고 물가가 오르면서 씀씀이도 줄여야 했다. 그동안 사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고칼로리라 먹고 나면 속이 부대끼기도 했다. 이젠 손수 해 먹는 음식에 익숙해졌다. 요즘은 푹 쉬고 싶은 주말이나 병원에 가는 날, 겸사겸사 밖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렇게 어쩌다 한 번, 더 귀한 마음으로 성지 순례하듯 외식을 한다. 전에 비해 선택의 폭이 줄었지만, 보물찾기 하듯 나름의 취향으로 몇몇 단골 가게들을 찜해 놓고 있다.



1. 봉평메밀

사실 이 집은 돌솥비빔밥 맛집이다. 초여름 무렵 소바집을 찾아 들어간 곳인데, 옆 테이블 지글거리는 돌솥 소리에 홀려 주문을 하고 말았다. 뻔한 비주얼이었지만 뻔하지 않은 맛이었다. 메밀국수 역시 매끄러운 면발과 살얼음 동동 짜지 않은 육수가 탁월했다. 물도 메밀차로 내어주고 봉평에서 직접 공수해 온 메밀가루를 쓴다고 한다. 엄마, 아빠, 딸 세 가족이 하는 작은 식당으로 아빠가 주방을 맡으신다. 이 부분에는 꽤 흥미로운 서사가 있을 거 같다. 전, 만두, 돈가스 등 요즘 보기 드문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곳이다. 골고루 다 맛있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다정한 집밥 느낌라 좋다.



2. 무이네 쌀국수

이곳이 오픈할 때부터 가던 곳이다. 단골이 된 이유는 맑고 투명한 육수, 향신료향이 진하지 않는 맛 때문이다. 면 위에 채 썬 양파와 숙주를 듬뿍 올려준다. 슴슴한 육수는 언젠가 먹어본 맛이 느껴진다. 이곳 역시 별거 없어 보이는 게 고수임이 틀림없다. 이곳 주방장은 20대로 보이는 동남아 여성분이다. 가끔 남편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과 교대하며 꼬물거리는 아이를 돌보는데 그 모습이 정감 있어 좋다.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는 모습이 예쁘다. 1인 가계라 주문은 키오스로 하지만 음식이 나오면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몇몇 지인들을 이곳에 데려갔고 다들 반응들이 좋았다. 부디 오래 남아주길 응원하는 마음이다.



3. 팥내음

이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지만 팥빙수를 먹는다. 이미 단골들이 많은 이곳은 수제 팥 전문점이다. 겨울에는 팥죽, 여름에는 빙수를 판다. 강원도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팥을 이용하며 너무 달지 않고 양이 적당해서 좋다. 보통 찬 음식은 더 달게 만들기 때문에 먹고 나면 입안이 찝찝하고 갈증이 나는데, 이곳은 과하지 않는 단맛이 천천히 올라와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사각사각한 물얼음과 우유, 직접 만든 수제 팥과 콩고물 인절미가 전부인 옛날 빙수 스타일이다. 한창 더울 때 가게에 가면 홀 가득 손님들이 노란 놋그릇에 1인1빙수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4. 쌀호두과자

작년 겨울 외래로 항암을 하고 돌아오는 길, 나에게 주는 선물로 호두과자를 샀다. 그렇게 여행 다녀온 척 집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기다려준 반려인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당시 밀가루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쌀호두과자집을 찾았다. 스무 알 남짓 들어있는 박스를 여의주처럼 고이 안고 아이처럼 소중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균 연령 50대인 작은 읍에 살다 보니 떡집도 많고 할머니 취향의 간식들이 제법 있다. 병원이며 식당이며 할세권의 덕을 톡톡히 보며 살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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