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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29. 2024

방토조림 주먹밥

산 꼭대기 쉬어가는 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온도계의 앞자리가 3에서 2로 바뀌는 순간, 마법처럼 짜증이 줄고 관상이 바뀌었다. 냥이들도 살만한지 새벽 일찍이 사냥을 가자고 한다. 아침마다 깨물고 핥는 통에 발가락이 없어질 거 같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점심때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다시 한여름이 된다. 여전히 반려 손수건을 곁에 두고 수시로 땀을 닦으며 집안일을 하지만 선풍기 바람에 열기는 금방 날아간다. 실연당한 청춘처럼 죽어라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이 계절의 끝물을 알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원망했는데 이번에도 제 풀에 꺾여 체념하는 순간이 되니 가을이 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화단 옆에는 빨간 고추들이 널렸다. 여기저기 팔로우들의 간택 소식도 들려온다. 이번 주말엔 벌초도 있고, 올해는 추석도 이르니 슬슬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2024년의 여름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생각해 본다.



올여름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열무김치였다. 반려인 셔틀로 한동안 부지런히 얻어먹었는데 이제 염치가 없어 비법전수를 받아야 할 거 같다. 휴양지 대신 서울과 부산을 다녀왔고, 미뤄왔던 치과치료도 받았다. 두 번의 정전이 있었고, 역대급 더위에 전기세 폭탄이 예상된다. 이른 노안이 시작되었고 새로이 안경도 맞추었다. 나쁜 순간은 가지치기하고 좋은 추억은 예쁘게 간직하기 위해 부지런히 기억 조작 작업을 해야겠다. 더위에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보냈으니 괜찮은 여름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이른 가을 소풍을 상상하며 주먹밥을 만들었다. 잔잔한 일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소박하고 단아한 한 끼를 먹고 싶었다. 주먹밥 하면 우메보시지만 우리 집엔 그런 거 없으니 방울토마토 조림으로 대체했다. 방울토마토는 익혀 껍질을 벗긴 후 오일, 간장, 매실액으로 졸여 만든다. 버섯은 잘게 다져 볶은 뒤 잡곡밥과 섞어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한다. 삼각틀에 넣고 손으로 꼭꼭 누른 뒤, 밥 알이 잘 뭉쳐졌으면 틀에서 꺼낸다. 김으로 감싸고 그 위에 에 방토조림을 올리면 끝. 마치 산 꼭대기에 해가 걸린 거처럼 귀여운 모양이 된다.

 뜨거운 햇살, 늦여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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