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29
< 지구의 기분 >
기온 28에 습도 65. 라디오에선 열대야가 기승이라고 했지만 내가 사는 곳은 해만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픈 매를 먼저 맞아서일까, 7월 초 답지 않던 폭염이 훑고 지나가니 오히려 여름답다 느끼며 지낸다. 온 아파트가 전력난 경보로 시끄러울 시기지만 이상하리만치 잠잠하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집도 이맘때쯤 어떻게든 꾸역꾸역 돌렸는데 그마저도 여태 켜지 않고 있다. 덥다 덥다 하면서도 그럭저럭 살만하고, 그럭저럭 살만하니 그러려니 하게 되고, 그러려니 하게 되니 별 일 아닌 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영화관에 갔다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나왔다. 한 달에 거쳐 28도로 세팅된 몸은 정수리에 내리꽂는 직사 냉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챙겨간 긴 옷을 꺼내 걸치고 띵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어둠 속에 일렁이는 엘사 바람이 시린 칼을 들고 덥거나 춥거나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위협하는 거 같았다. 에어컨 바람을 실컷 쐬고 집에 오니 그제야 우리 집 에어컨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좀도둑처럼 작은방 창문을 넘어가 실외기실을 청소를 했다. 커버를 벗기고 먼지를 치우고 차양막을 설치하는 사이 또로로 땀이 흘렀다. 그러다가 칭찬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해졌다.
밤의 어둠으로 별을 보고, 겨울의 추위로 온기를 느끼고, 여름의 더위로 시원함을 즐기라고 창 밖 나무들이 말했다. 파도처럼 쓸려갔다 밀려오는 리듬에 맞춰 춤 추듯 살라고 했다. 요즘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표정을 구경하는 재미로 산다. 통실통실 구름을 올려다보며 군침을 흘렸다가, 해 질 녘 황혼에 몽글몽글 순두부가 되었다가, 윙크하는 손톱달에 만화 속 주인공인척 세일러문 노래도 흥얼거린다.
어제오늘 지구는 아이처럼 순수해 보인다.
< 작업 일지 >
여름을 달려 휴가를 향해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수시로 덥지만 금세 시원한 마음이 된다. 휴가보다 여행보다 생일보다 크리스마스보다, 그 걸 손 꼬박 기다리는 마음을 좋아한다. 얄짤 없는 현실을 넘어 상상의 여지가 있는 가까운 미래를 꿈꾸는 게 훨씬 더 황홀하다. 그런 마음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지갑과 텀블러, 손수건, 책, 양산 등 간단한 소품이 들어가는 크로스백을 만들었다. 1박 2일, 짧은 나들이니 최소한의 짐을 싸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일상 같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누가 봐도 여행 가방 같지 않은 가방이다. 한동안 마구 들고 다니는 애착이가 될 거 같다. 헌 옷의 정체성을 살려 끈과 여밈을 만들고 남은 원단은 차후 지갑을 만들 생각이다. 버려지고 잊히고 싶지 않은 건 사람이나 옷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 그러니 자주 쓰고 예뻐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