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9
< 지구의 기분 >
맑은 날 사이사이 수시로 비가 내린다. 길가에 널려있던 고추들은 태양신이 내리꽂는 직사 광선검을 은총처럼 받아들였다. 혈기왕성한 여름을 보낸 나무들은 희끗희끗 저마다의 퍼스널 컬러를 뽐낼 준비를 한다. 그렇게 비가 내렸는데도 더 이상 눅눅하지 않다. 앞자리가 2로 바뀐 온도계, 창문 너머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점점 짧아지는 해 길이... 습함과 촉촉함은 특정 계절의 고유형용사라는 확신이 든다. 관대해진 지구를 따라 내적 평화가 찾아왔다. 비염과 털갈이, 비듬과 각질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동시에 허그의 계절이자 식욕의 계절, 인성 순화의 계절이 도래했음을 느낀다. 무차별적 땀샘의 방류가 끝나고 미간의 계곡이 메꿔졌다. 여유로운 마음이 발성의 옥타브를 높이고 빈약한 나노 모발도 살랑살랑 센티함을 뽐낸다. 짧아지는 허기의 빈도만큼 산책 욕구가 샘솟고 있다.
< 작업 일지 >
겨울을 좋아하는 집순이는 가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날씨와 풍경의 도움으로 자발적 산책이 가능한 시기이다. 산책을 하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서는 순간 회귀본능이 발동한다. 어디든 떠날 때엔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라는 마음이 왠지 안심을 준다. 외출을 할 것인가, 집에 남을 것인가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 계절의 찬스를 얻으면 운동화를 신을 수 있다. 그런 사사로운 마음에는 집순이 집사들을 위한 키링이가 절실하다. 들쭉날쭉 애매하게 남아 꼬깃꼬깃 꿈쳐둔 자투린 원단들… 지난날 미처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을 마주하듯 하나하나 펼쳐 재단을 하고 손바느질을 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를 지켜줄 경호냥을 떠올리며 피식피식 미소도 짓었다. 멍청미가 다분해 보이지만 이래 봬도 유단자? 출신이다. 이제는 산책길에 만난 멍집사들이 부럽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