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7
< 지구의 기분 >
올 추석 보름달쇼는 물 건너가버렸다. 앞뒤로 빨간 날이 잔뜩 붙은 10일에 걸친 추선 연휴 내내 비 소식이 있다. 지구는 인간들의 긴 휴가를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레이저빔을 쏘아대는 드론 버그쇼보다 달항아리 슈퍼문쇼를 더 보고 싶었는데… 천고마비의 뜻을 받들어 몸과 마음을 살찌울 준비를 하고 있었 건만 스마트폰 속 일기예보엔 초대하지 않은 구름들이 잔뜩 몰려와 있다. 썰렁한 기운에 긴 옷을 걸치니 물 먹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젖어든다. 하루 종일 틀어놓은 제습기에선 만수르 알람이 울리고, 헐벗은 집사는 자꾸 고양이들을 끌어안는다. 미세먼지 속 F94 마스크 쓰듯 수시로 뽀송뽀송 털을 쓰다듬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선 가뭄지역에 인공 강우를 만들어 뿌린다고 한다. 당연한 부작용으로 역대급 태풍이 불거나 홍수가 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다. 뭐든 선을 넘으면 명을 재촉하는 법, 신이 화를 내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돌처럼 거북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장수의 팔자를 누릴 수 있다. 근래 들어 우리가 플라스틱을 줄일 수 없는 이유를 알아냈다. 그건 바로 여지껏 화석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 시추를 계속하는 한 알록달록한 인공 스톤의 무한 생산은 불가피하다. 그토록 목이 터져라 노플라스틱과 제로웨이스트를 외쳐도 체내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정비례 곡선을 그리며 증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체 플라스틱의 상용화는 이미 실행 가능한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석유 기득권 세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겨우겨우 녹말이쑤시개나 생분해 비닐 정도의 생산에만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요즘엔 잘 보이지 않지만… 돈이 되지 않는 기술들은 발달이 더딜지 몰라도 결국 인류를 구해낼 것이다.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어 주는 열쇠는 지구의 핑거스냅에 달렸다는 걸 그간의 짧지 않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 작업 일지 >
추분이 지났지만 내가 아는 가을이 아니다. 가을을 도둑맞았다는 마음이 드는 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단 뜻일지도 모른다. 귀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은 늘 한 템포씩 느려서 스스로를 번뇌에 담금질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스킵하는 건 절차를 중시하는 루틴만능주의 최집사에겐 허용되지 않는다.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어떻게든 아련한 정취와 감성을 불러들일까 한다. 가을 없는 가을의 분위기를 만끽하려 작은 티코스터에 계절을 담았다. 자투리 원단을 오리고 한 땀 한 땀 손수 수놓은 밤군과 땅콩양도 앙증맞게 붙여보았다. 자고로 집순이 햄스터족이라면 땅콩과 밤을 가까이해야 한다. 공장에서 벽돌처럼 찍어낸 고열량 에너지바에 견줄 수 없는 제각기 앙증맞은 비주얼은 지구의 보물이자 보석. 깊은 뻘 속 조개가 진주를 품듯, 어두운 땅속에서도 열매를 낳고 날카로운 가시밭 속에서도 알을 품는 마음을 과연 인류는 헤아릴 수 있을까. 차마 사랑하지 않은 수 없는 계절이 왔음에도 그 시절을 잃어버린 거 같은 헛헛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추억을 무해하고 소박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 하루빨리 저답게 물든 나무들과 구름이 걷힌 하늘의 민낯을 만나길 바란다. 우리가 고독을 즐기는 이유는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란 걸 누구보다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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