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제철앞치마, 조각조각 이어 붙인 계절의 기억들

251022

by 최집사



< 지구의 기분 >

한로도 지났고 추석도 지났는데 가을 단풍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대로 가다간 일 년의 반 이상을 여름으로 나게 될 거라는 이계절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순간순간 들이닥치는 찬기운에 극세사 이불과 수면 잠옷을 꺼내두었지만 하루 중 대부분은 세신사 패션을 고수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추바카가 변신하는 집사를 냥이들은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엊그제는 글쎄 뻔뻔하게 무전취식 중인 모기에게 강제 헌혈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떠날 때를 모르고 진상을 부리는 손님에게 방 빼라고 닦달하는 것도 기운이 달려 못할 짓이었다. 구름 가득한 하늘,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옷을 입었다 벗었다, 이불을 덮었다 걷어찼다 춤추듯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작년에 이어 기승을 부리는 가을장마와 작년에 이어 승승장구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가 머릿속에 오버랩된다. 산업 혁명 당시 영국의 모습도 이랬을까. 그토록 잘 나가던 시절에 그곳의 하늘도 이리 먹먹했을까…


< 작업 일지 >

이대로 가을을 잃어버릴 수 없다. 추석에 평냉을 먹고 사시사철 열무김치를 담을 수 있는 것으로 계절의 존재감을 대신할 수 없다. 몸이 기억하는 온도, 영혼이 그리워하는 냄새를 떠올리며 사춘기 여고생 교복 같은 앞치마라도 만들어 입어야겠다. 근래 스스로를 가족 돌봄 가사 노동자로 명명했다. 하루 대부분을 집안일의 망망대해 속을 유영하며 보내지만 호텔에 일하러 왔다 생각하고 청소를 하고 식당에 일하러 왔다 생각하며 밥을 만든다. 무직의 백수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그러는 사이 종교인의 마음이 되고 장인의 태도를 배운다. 생기 발랄한 학생들의 몸에 딱 맞는 교복과 커리어 철철 넘치는 OL의 세련된 유니폼을 부러워했던 때도 있었다. 마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은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 말해주는 자립의 상징이었다. 헌 옷과 자투리천을 이어 만든 가을 냄새 물씬 나는 나의 작업복, 세상 하나뿐인 앞치마 하나로 그런 마음까지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백보다 구두보다 값비싼 그릇들보다 손수 만든 앞치마를 모으며 살고 싶다고... 아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허세와 낭비를 두려워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구의 이웃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