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51014
< 지구의 기분 >
가을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했다. 폭탄 투하하듯 열매를 떨구는 은행나무와 동네 공원 호수에 알 박기 한 오리들, 한껏 팥이 삐져나온 붕어빵에게 들은 정보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꺼내둔 가을 재킷을 다시 넣었다. 털갈이하는 마음으로 수면 잠옷과 로브를 챙겨 입고 양말도 두 겹씩 욱여 신었다. 냥이들의 의욕은 정점을 찍어 하루에 네 번씩 사냥 요청이 들어온다. 마치 제철 다람쥐가 도토리 묻어둔 곳을 잊어버리는 거 처럼 사냥했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 거 같다. 그 덕에 이 몸은 저들의 어시스트 활동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다. 틈틈이 구워대는 식빵. 컴컴한 새벽 공기 속 보름달 같은 엉덩이에선 최고급 버터롤 냄새가 난다. 이런 궁상스런 방식으로 가을의 부재를 겨울에게 이월해 위로받고 있다. 25프로 부족한 계절, 틈틈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온기로 작은 구멍들을 어떻게든 때우고 메꾸며 지낸다. 그렇게 지구의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언가를 눈치채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 작업 일지 >
주남저수지, 화포천 생태 습지, 낙동강수변공원. 내가 사는 주변엔 철새들의 세컨드 하우스가 많다. 그 덕에 매년 이맘 때면 기러기 떼들의 V자 고공행진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간격을 유지한 채 무리 짓어 날아오는 풍경은 여느 드론쇼 못지않다. 가끔 고래고래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제 다 왔다고 으쌰으쌰 하는 거 같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묘하게 할미 미소 짓게 된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와 고단한 여정 끝에 쉴 수 있다는 행복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거 같다. 그런 마음을 상상하니 키링이를 만들고 싶어졌다. 영원의 소울메이트 새와 나무. 나무가 새를 품듯 강과 습지가 저들을 잘 품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