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집장인의 새활용 잎치마

No.071125

by 최집사



< 지구의 기분 >

아침엔 겨울이었다가 한낮엔 다시 여름이 된다. 반팔에 패딩을 껴입게 만드는 날씨이다. 아침 해의 늦잠 덕에 청초한 새벽달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각한 가을에 아쉬움도 크지만 그만큼 귀해지는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다. 사흘이 되었든 일주일이 되었든 보너스처럼 주어진 시간이니 부지런히 산보를 다녀야 한다. 알록달록 단풍들 사이에 아직 초록을 떨치지 못한 나무들, 열매를 잔뜩 떨군 은행나무와 일찍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동면에 들어간 가로수들이 보인다. 여기저기 날파리 떼 결계와도 자주 마주친다. 파란 하늘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가 하루살이 자경단에게 목젖을 가격 당한다. 종종 안경에 몸을 던지는 녀석도 있고, 콧구멍에도 들어가 동맹을 청하는 녀석도 있다. 그럴 땐 유명 스타라도 된 거처럼 고개를 숙이고 손을 휘저으며 골목을 빠져나온다. 동네 하천과 호수는 청약에 당첨된 청둥오리들이 삼삼오오 입주를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는 기러기 떼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조만간 철새들의 축제 시즌인 모양이다. 길고 길었던 여름이니만큼 벌레들 맛집이라고 소문이나 났으면 좋겠다.


< 작업일지 >

인간의 내외적 형상의 대부분은 태어나서 10살 때까지의 경험들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간 먹었던 음식들과 들었던 말, 받았던 관심, 시도했던 도전과 결과, 그에 따른 주변의 반응들… 이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체질과 성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바라보면 현대의 노인들의 평균 수명 연장과 청년들의 질병률 증가를 산업화 이전과 이후의 식습관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몸과 마음에 일찍이 경고등이 켜진 것도 어린 시절의 과자 중독과 운동 부족, 스키니 바지에 높은 구두를 신고 인스턴트와 별다방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성공한 삶이라 착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 거쳐간 질병들로 배운 게 있다면 힘든데 돈 안되고,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찝찝하고, 하고 나면 뿌듯한 일이 어찌보면 돈을 버는 일이고 결국엔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걸 깨닫고 몸소 증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상을 챙기고 의식적으로 가사 노동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는 수많은 학원과 자격증을 비롯한 최저임금 단기 알바 구인 광고에 현혹되지 않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 남다른 애정과 직업의식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 큰 뜻을 품고 알록달록 앞치마를 여러 개 만들어 입는다. 몇 안 되는 외출복에 비해 꽤 다양한 앞치마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모두 헌 옷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패턴을 구상하고 자르고 박고 다림질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독한 프리랜서 봉사활동 같은 일에도 나름의 자부심을 부여한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앞치마를 꺼내 입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응원한다. 그렇게 음식을 만들고 집과 가족을 보살피는 일이 숲이 나무를 키우는 일과 닮아있다는 걸 깨달으며 매일매일 과하지 않은 성실함으로 살아내려고 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