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70126
< 지구의 기분 >
꽁꽁 얼어버린 날씨에 입김으로 도넛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구름이 떠난 하늘엔 분주한 새들이 무리 지어 수를 놓는다. 전국적인 눈 소식에 새벽같이 눈이 떠졌지만 내가 사는 남쪽 동네는 열외라는 현실과 마주했다. 아쉬운 대로 설국의 강원도와 슈톨렌이 된 한라산, 여기저기 퐁퐁 쏟아지는 눈 영상을 찾아보며 군침을 질질 흘렸다.
오겠지 오겠지.. 기다리면 오겠지.
겨울이 오면 양말 두 개에 털신까지 꺼내 신는다. 아침저녁으론 극세사 로브와 목도리도 완전 무장을 한다. 자기 전 안방에만 보일러를 돌리고 낮에는 그때그때 엉뜨와 난로를 켠다. 갓 씻고 나와 차가워진 손과 발은 냥이들 뱃살 속에서 천천히 녹인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추위에 내성이 생겨서일까, 과도한 방한 패션 때문일까 조금만 움직여도 겨드랑이가 훈훈해진다. 독감접종도 맞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올 겨울 들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 여름의 시원함보다 겨울의 따뜻함을 애정한다. 열대야 속 러닝 후 맥주처럼, 한파 속 산책 후 코코아처럼, 양극의 감정을 오가는 사이의 행복을 변태처럼 즐긴다. 그런 가볍고 무해하고 자발적인 만족을 위해선 추운 계절을 적당히 춥게 지내야 한다.
< 작업일지 >
틈틈이 아이디어를 메모해 두었다가 패턴을 뜨고 재단, 제봉을 거쳐 샘플을 뽑는다. 한 달 이상 직접 사용해 보고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해 작업을 진행한다. 낡은 옷을 세탁하고 해체하고 다리고 라벨과 부자재를 떼고 분류하는 작업들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품이 든다. 아침에 집안일해 놓고 잠깐, 오후에 점심 먹고 한동안. 마음먹고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하루에 가방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 만든다. 할 때마다 부족한 게 보이고 쓸 때마다 수정할 게 밟힌다. 아이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럼에도 간간히 올라오는 하트와 주문, 어디선가 그 쓰임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딸깍하고 초록불이 켜진다.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아무나 못 사는 걸 만들고 싶다. 물욕이 소멸 중인 나도 돈 주고 사고 싶은 걸 만들고 싶다. 시끄러운 광고에 돈 태우지 않고 조용히 나누고 연결되고 싶다. 금방 실증 나서 버려지지 않을, 쓸 때마다 정이 드는… 지금은 하찮은 그 가치가 주식처럼 나날이 우상향 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약속 같은 게 필요할 것이다.
하나, 돈보다 시간을 더 들인다.
두울, 지구와 환경을 배려한다.
셋, 직접 만들고 소량 생산한다.
넷, 한 달 이상 사용해 본다.
다섯, 광고를 하지 않는다.
* 여담 : 사실 작년부터 몇몇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 문의를 하고 있지만 한 곳도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실망과 자책에 쿠크다스 멘털이 미세먼지처럼 탈탈 털렸다. 동시에 지인들의 응원과 하트, 좋아하는 마음들로 다시 용기도 얻었다. 그 모든 마상의 아픔이 새로운 씨앗이 되길… 절망하는 것도 나가가는 방법이라고 최면을 걸어본다. 감히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쿰쿰한 인간 냄새나는 실패의 서사가 필요한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