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00126
< 지구의 기분 >
눈이 오면 아무도 모르게 눈사람을 만들겠노라 벼르고 있었다. 릴스며 쇼츠며 동화 같은 설원 풍경에 중년의 바람은 철없이 날개를 달았다. 입춘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선 냉정하게 개화 소식을 알렸다. 피터팬을 연모한 팅커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에도 제주의 유채와 양산에 매화, 냉이와 달래 쑥 미나리가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아쉬움의 구멍은 기대로 메꾸고 장기투숙한 철새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새 절기와 함께 설도 지나갔다. 쩌렁쩌렁 울어대는 까치의 울음이 노래인지 통곡인지 알 길이 없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반가움을 투영해 본다. 전국적으로 발발?된 며느리 독립운동의 수혜로 명절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덕분에 긴 연휴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온전히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선택적 설음식을 만들고 평소 잘 먹지 않던 음식들도 사 먹으며 두 식구 단출한 식사들을 맞았다. 설찐자의 반열에 오르며 부지런히 산책도 하고 작업도 하고 나 홀로 느슨한 루틴의 줄을 이어갔다. 그렇게 지구의 리듬에 맞춰 봄을 횐영하는 왈츠 스탭을 당겼다.
< 작업일지 >
요리를 할 때마다 행주 둔 곳을 잊어버리곤 한다. 특히 식자재를 씻고 다듬을 때마다 물이 흥건한 두 손을 어찌하지 못할 때가 있다. 뚝뚝 떨어지는 물을 앞치마에 대충 닦는 것도 영 게운치가 않다. 막노동 인부처럼 목에 두를까, 멀끔한 양복 행거치프처럼 가슴에 꽂을까, 요리조리 고민하다 앞치마에 붙이기로 했다. 무해하고 지구 친화적인 스스로를 살리는 제복. 음식이 주는 평화의 힘을 믿는다. 헌 셔츠를 자르고 소창원단으로 만든 행주를 연결하고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수놓은 라벨까지 달았다. 이 주 넘게 직접 써보니 더 애착이 갔다. 배려와 정성이 담긴 도구는 노동의 퀄리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법. 화려하고 그럴듯한 음식을 만들진 못하지만 나만의 작은 식당의 셰프가 된 거 같다.
어쩌면 쓸모있는 귀여움.
* 주문 제작은 아래 링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