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외 편. 3 ] 꼬꼬복지수첩

260324

by 최집사



< 지구의 기분 >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론 으슬으슬 춥다가도 한낮에는 인중에 땀이 삐질 맺힌다. 산책길 발아래 민들레, 쑥, 냉이를 스캔하며 봄꽃의 개화를 헤아렸다. 집안일을 마치고 점심을 챙겨 먹고 거실 소파에 잠시 몸을 뉘니 팔다리에 힘이 없고 노곤노곤한 기운이 감돌았다. 춘곤증이 창궐했음을 직감했다. 이토록 봄이 요란을 떠는 건 인간들을 재우고 싶단 소리겠지. 영생과 풍요를 바라던 마음은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코로나도 전쟁도 우리의 올가미가 되었다. 진작 곯아떨어진 냥이들을 보니 미래엔 저들이 장수하겠다 싶다.


< 작업일지 >

199*년 사춘기를 보낸 이 몸엔 다꾸의 관성이 남아있다. 그땐 6공 다이어리의 두께와 사쿠라팬의 종류로 신분을 가늠했다. 이맘 때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으로 책 커버링을 했다. 입시로 저주받은 교과서를 신성한 오라버니의 얼굴로 정화하는 작업은 일종의 의례 같았다. 뿐만 아니라 DIY 필통 제작은 억눌린 창작 욕구를 발산하기 충분했다. 원하는 사이즈와 내 맘대로 디자인을 반영한 하드보드지로 만든 커스텀 필통은 각자의 알록달록한 아이덴티티를 대변해 주었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다꾸 자랑과 꾸밈 정보교환은 집단 속 연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결이 맞는 친구들과는 교환일기라는 걸 썼는데 같은 반이 된 친구, 같은 반이 되지 못한 친구, 마니또 선배, 동아리 멤버 등등과 정기적인 밀지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아직 여물지 않은 풋사과 같은 마음을 모두 쏟아 낸 치열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우리는 차곡차곡 추억으로 남겼다.


시간이 흐른 지금, 깜박증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기록을 한다. 살 것들과 할 일. 챙겨야 되는 일, 잊으면 안 되는 이벤트 등등… 그렇게 일상을 붙들어주는 작은 되새김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마다 큰 포부를 안고 샀던 다이어리들이 매번 1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니 이젠 예전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다이어리는 부담스럽다. 그동안의 지키지 못한 숱한 계획들과 죄책감은 오늘의 이면지 메모지를 탄생시켰다. 손바닥 크기로 자른 이면지를 링으로 연결한 게 전부인… 커버할 것을 찾다가 계란 포장을 잘라 붙였다. 그 계란이 복지란이었고 동시에 스스로를 암탉이라 상상하며 이름을 붙였다. 꼬꼬복지수첩!! 마구 쓰기 좋고 리필이 용이한 디자인이다. 암탉을 울리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거창한 목표도 근사한 계획도 없는 하루하루를 지켜주는 건 누구도 울지 않는 보통의 마음을 돌보는 암탉의 아이템 들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