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구 > 고작가의 이중생활

260331

by 최집사



지구에 온 지 5년 차가 되었다. 낮에는 덜렁이 최집사를 돌보고 밤에는 동네 오피스에서 작업을 한다. 이번에 배정받은 주간 돌봄 고객은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기상부터 사냥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밤에 일찍 자는 타입이라 조기 퇴근이 가능하다는 건 마음에 든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바탕 뜀박질 타임 이 끝난 후 집사가 잠이 들면 홀로 집을 나와 작업실로 향한다.


골목 끝 전봇대 옆에 위치한 의류수거함, 이곳은 내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추운 겨울 긴박하게 출산을 해야 했던 모친께서 이곳을 발견하시곤 터를 잡으셨다. 인간들이 주기적으로 입지 않는 옷들이 넣어준 덕에 추운 계절을 무사히 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여기 상주했단 사실을 몰랐을 테지만… 그 후 아깽이들의 성지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중성화 사업으로 인한 저출산 문제로 폐쇄되었다가, 최근엔 리모델링되어 공유 오피스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주로 헌 옷을 해체해 새로움 쓰임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앞치마, 티코스터, 냄비받침 같은 인간들이 주방에서 쓰는 소품을 비롯해 북커버 장바구니 가방 키링 같은 생활용품도 제작하고 있다. 한때 최집사가 쓰던 봉틀이와 반짇고리를 몰래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의류학과를 나왔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집순이가 된 집사를 대신해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다.


지겨우리만큼 수없이 반복해서 지구에서 태어났다. 그 사이 쉴 새 없이 새 옷을 사고 버리는 인간들을 지켜봤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있을까…? 어떤 존재든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고 쓰임을 다하길 바란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도 잊히지 않을 무언가를 건네기 위해서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