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펙을 나열하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 얘 엘리트네?'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나이를 듣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인생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쩌다 보니 열심히 살았으나 늦어지게 된 인재라고 생각한다.
내 나이 서른, 솔직히 말해서 아직 회사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스스로 유학 자금을 벌어 일본에서 24살에 늦깎이 신입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유롭지는 않으나 부족하지도 않은 누구보다 제대로 일본 유학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1년간 미국으로 교환학생까지 다녀오며 영어 실력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일본 유학생들의 약점인 영어 실력까지 갖춘 셈이니 더 뿌듯했다.
미국 유학 후에는 한국에서 우연히 바로 광고회사에서 3개월 간 인턴 기회까지 얻고 정직원 전환 제안까지 들었다. 그곳에 일은 재미있었으나 당시에는 '이름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이상한 자존심에 거절했고, 바로 1개월 후, 유명 콘텐츠 회사 전환형 인턴에 덜컥 합격까지 해버렸다. 분명 한국 서류 통과도 힘들고 면접에 가는 것도 힘들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생각보다 쉬웠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인생의 모토가 감사하자였는데. 여태까지 모든 거에 감사하고 살자였고 감사하며 살았는데, 감사함을 잃어버렸다. 사회인으로서의 시작은 지금부터인데, 나는 시작도 전에 자만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일했던 콘텐츠 회사는 콘텐츠 회사 IP회사라고 하나 결국엔 타켓이 영유아다 보니 점점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일도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오히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던 이전 광고회사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일이 재미없고 지루하다 보니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사분들에게 보였고 정직원 전환에서 나는 보류가 되었다.
내가 일을 잘한다는 건 상사 분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내가 열정을 보여준다면 전환해줄 거라고 제안해주셨지만, 당시의 나는 그때는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도 모르고 자존심만 강해서 '흥! 내가 이까짓 회사! 실업급여만 받을 수 있도록 6개월만 받고 나올 거야!'라는 마인드로 남은 3개월을 팀한테만 민폐끼치 않을 정도로 내 할 일만 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나의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턴도 6개월 만에 종료되었다.
그때는 2020년 7월이었고,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장기화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도 하기 전이었다. 취업시장이 이렇게 얼어붙기 전이었고,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서 모색하기로 했다. 그냥 무작정 쉬는 건 내 성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요즘 핫한 데이터 분석 수업을 들으며 일본 취업과 한국 취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생각보다 빠르게 가고 싶었던 직무의 일본 회사의 내정을 받게 되었고, 나는 다시 일본에 가기로 결정했다. 일본 시장 전문가의 시작, 일본에서 일본 국내 광고쟁이로 말이다.
그러나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까지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끝내고 입국하나 했더니, 일본 정부가 <신규 비자 발행 중지, 외국인 전면 입국 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강경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가 2021년 1월 경이었고,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맞이하고 있으니 저런 정책 펼칠 수 있다고 저때까지는 이해했었던 것 같다. 5월에 입국 완화가 되지 않으면, 올림픽 끝나고 입국 금지 해체를 하지 않을까라고도 예상을 했기 때문에 다른 신규 입국자들과 달리 여유로웠다.
이건 일본 정부가 내게 준 합법적인 휴가다!!!
라면서 말이다. 이런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일본 입국 금지 기간 동안 나를 블로거로써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나는 운동, 피부관리 등 나를 돌보는데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2021년 11월, 드디어 일본의 입국 금지 정책은 완화되었고, 드디어 일본 신규 비자를 받고 일본에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올림픽도 끝났겠다, 일본 내 선거도 끝났겠다.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인을 막을 구석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일본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