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널 데리러 가마
휴가 첫날
오늘 아침에 치통과 치아 감염으로 고생하던 15살 노견을 동물병원에 맡겨놓고 왔다.
동물병원은 왜 사람처럼 수술실 가기 전까지 같이 있으면 안 되는지 속상하다.
작은 아이가 날 긁으면서 마치 묻는 듯하다.
“언니는 어디다 두고 엄마만 온 거야?”
”어제 우리 여기서 새우깡도 먹었잖아 언니랑 “
‘그래 언니는 이제 새우깡을 못 씹을지 몰라서 어젯밤에 주었지’
’ 언니는 이제 새우깡을 물에 담갔다가 먹어야 할지 몰라 ‘
집에 왔을 땐
문 앞에서 끙끙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혼자 집에 둔적이 없는지라
셋째는 아침밥도 안 먹고 저러고 있다.
오트로 만든 간식 하나를 주어서 기분을 업을 시켜주어 보지만 우울한 눈치다.
저러고 있다가 밥도 안 먹고 잠이 들었다.
15살 우리 노견은
치매도 살짝 있고
쿠싱증후군도 있고
간수치도 높고
얼마 전까지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으면서 고생을 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두려웠지만
아픈 이는 뽑아야 할 것 같아서 결정을 했다.
남은 인생을 아프지 않게 살다 가려면
지금 이런 고비를 넘겨야 하는 듯하다. 나도 우리 노견도 말이다.
요 며칠 좀 나아져서 좋은 듯 보였으니
그 힘으로 수술 잘하고 오자꾸나
힘을 내자 아가야
15살을 먹어도 내게는 평생 아가인 우리 아가
힘을 내서 건강히 돌아오너라!
그러리라 믿는다.
데려다주고 와서 마음이 두렵지 않은걸 보니
무사히 돌아올 것은 같지만
내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안심할 수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슬픔이 울렁이며 밀려온다.
할 일이 많다.
시장도 봐야 하고
죽을 만들어야 하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슬퍼할 시간이 없다.
함께 산지 14년 9개월
이번 달이 생일이고 두 달이 되었을 때 젊은 부부에게 입양되었다가 한 달 후 내게 파양 되어 와서
14년 9개월이나 함께 나와 인생을 보냈다.
이곳 머나먼 타지에서
우리 노견도 나도 잘도 버텨 낸 것이다.
동생을 얻었지만 그이쁘디 이쁜 동생은 일찍 보내야 했고
지금은 그림 속과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다음으로
털이 꼬불꼬불한 녀석이 슬퍼하던 우리 노견과 나에게 선물처럼 온 것.
먼저 간 아이의 환생처럼 우리에게 와 주었다.
가정집에서 낳아 파는 아이들 중에
이아이가 같이 보러 간 우리 노견에게 다가와 핥아준 이유로 이아이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먼저 간 아이가 하던 행동처럼 보였는지
노견은 동생을 잃은 슬픔을 잊고 새로운 이아이와 함께 차분히 그녀의 인생을 보내왔다.
아침에
동물 간호사와 함께 어정쩡하게 끌려 들어 간 노견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수술실이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저기서 살아 나와야 할 텐데…
그녀를 감싸줄 이쁜 담요도 준비해 두었고
이성적으로 준비는 해두었지만
사실 이게 현실이 되어 돌아오면 어떨지 나는 모르겠다.
태어나서 15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아이가 우리 노견이니까…
이아이를 어쩌나…
걸어 나오지 못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슴도 쓰리고…
내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이의 죽을 만든다.
돌아 올 테니까.
이제 야채를 썰어 넣어야 할 차례다.
오후에 보자꾸나
엄마가 널 데리러 가마
반가운 얼굴로 건강히 살아 있는 널
데리러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