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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애 Dec 02. 2022

찬란한 재회

피범벅을 닦아낸 얼굴이라도 좋아

오후 3시가 넘었다.

시장을 봐서 다 정리하고

싸온 야채들은 썰어서 냉장고나 냉동고에 보관해두고

가벼운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전화가 없었던 걸 보면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시장을 보면서도 혹시 전화가 올까 소리를 크게 해 놓고 주시하면서 얼른 사야 할 품목을 담고 집에 왔으니까

작은 아이는 혼자 집에 남겨진 적이 없어 울고 있더라…

간식 하나를 주고 얼른 언니를 대려온다며 집을 나와 동물 병원으로 행했다.


동물병원에 왔다.

12년째 다니는 병원

저기서 우리 노견이 나올 것이다.

비싼 병원비와 수술비를 다 내고 기다리고 있다.

수술하신 크리스틴 선생님이 먼저 오셔서

치아를 많이 빼야 했다면서

봉지를 보여주신다.

많이도 뽑았다.

얼마나 아플까 ㅠㅠ

작은 이까지 5-6개를 뽑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이번 수술이 마지막이 될듯하다.

15살에 잘도 버텼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주시면서 먹이라고 하셨다.

수술 전 피검사도 했는데 간수치는 좀 더 올라갔으니 약을 먹이자고 하신다.

그러마 대답했다.

또 당분간 먹는 약이 많이 졌다.

다시 10일 동안 항생제를 먹이고

프로바이오틱도 먹이고

간 약도 먹이고 영양제도 먹이고

아이를 위해서 소고기 민스를 샀다.

당분간 요리해서 주려고 한다.

수술 시 회복기간 동안 말이다.


아이가 드디어 나왔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닦은 자국이 영역해 보인다.

얼굴이 떡이 돼서 나왔다.

피 흘린 자국, 그리고 소독약 냄새

얼굴이 엉망이지만

살아서 저문을 나왔다.

처음엔 눈이 풀려 있더니

내냄새를 맡았는지 눈이 점점 초롱해졌다.


당분간은 그냥 저렇게 놔둘 생각이다.

입 주위가 얼마나 아프겠나.

그래도 날 보니 좋은가보다.


집에 데려와서 만들어 놓은 죽을 먹였다

처음엔 아파서 잘 못 먹더니 배가 고팠는지 겨우겨우 국물을 핥아 먹어서 입에 넣어주어야 했다.

한솥 끓여 놓았다.

부드러운 생선과 야채를 넣고 푹 삶았다.

그리고 믹서기에 넣고 조금은 갈기도 했다.

갈면 맛은 없다 ㅎㅎ

섞어서 주었다.

밥을 먹고 물도 간신히 먹고 눈이 점점 또렸해 져간다.

주사 맞은 팔은 절룩거리고 피검사 한 목은 멍이 들었다. 15년 사는 동안 수술도 참 많이 했다. 피부암으로 몇 번, 썩은 치아 때문에 몇 번을 했으니

이젠 30%의 치아 정도만 남았을 것 같다.

많은 수술을 잘도 버텨냈다.

잘 먹으면 그래도 살아낼 수 있다.

음식은 부드럽게 해 주면 되니까

치아가 없어도 괜찮다.


생각보다 건강하게 돌아온 노견을 보니 기뻤다.

절둑절둑 잘도 걸었다.

기적이다


기적같이 기도하고 글로 쓴 대로

건강하게 돌아와 주었다.


며칠 후 통증이 나아지면 그때 얼굴을 이쁘게 닦아주마.

지금은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잘 쉬렴.

고생했다 우리 아가.

좀 더 살 수 있겠구나.

엄마가 정말 한시름 놓았다.

엄마가 널 위해 휴가를 냈으니

2주 동안 잘 지내보자.

고맙다 아가야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이제부턴 엄마의 차례다

네가 건강히 회복될 수 있도록 잘 먹이고

잘 싸게하고 잘 재우는 거!!!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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