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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애 Jun 16. 2023

추억으로 돌아간 서울여행

8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이번 서울여행은  조금은 남달랐다.

1. 눈과 코가 일주일이나 너무 따갑고 아팠다.

두통도 왔고 일주일 내내 잠을 못 잔 것처럼 피곤했다.

2. 공기가 더 나빠진 것 같다.

3. 엄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픈 가족을 보살피고 지인과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4. 그리고, 어릴 적 고향을 방문을 했다.





 항상 마음으로 가고 싶었던 8살의 고향을 엄마와 함께 다녀왔다

13살까지 살던 응봉동.

산꼭대기 아파트에 살았는데 강건너편이 압구정이었다.

그 어린 8살의 나이에도 그 아름다운 야경을 기억하고, 산에 뒤덮였던 개나리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팔각정이 서 있는 아주 오래 전의 아파트 단지의 자리.

이 응봉산이 나를 꾸준히 불렀었다.

’ 내가 자란 이터에 나를 만나러 와달라고…‘

이번에는 꼭 가보자고 맘먹었고 실행에 옮겼다.

오래전에 아파트는 헐렸고,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가락동으로 옮겨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 자리에 팔각정과 다리만 남아 등산길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까지 모시고 다녀온 8살의 고향.

까치들이 반겨주는 건 단지 나만의 생각이었겠지만

정겨웠다.

야경은 아니더라도  멋진 대낮의 광경을 보고 인사를 전하고, 남아있던 큰 바위절벽에 눈인사를  했다.

’ 안녕 내 여덟 살의 고향‘

저 철망 밖의 그 바위를 기억하고 있다.

저 바위는 변함이 없지만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것들은 변했다.

누군가가 오래전에 이름을 새겨놓은 바위 …

이곳에서 5층짜리 아파에 살았으니 야경은 굉장했다. 야경이 좋은 아파트에서 복 받으면서 살았던 좋은 기억이 나를 이곳에 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금호동 사거리

팔각정을 내려와 금호동 사거리를 지났다.

저 연한 밤색 건물 앞에서 8살의 나는 동생과 함께 신호등을 건너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저 건물엔 롯데 파이오니아 대리점이 있었고

거기에서 음악이 너무 멋지게 나와 음악을 듣다가 학교를 지각할 뻔한 적도 있다.

내 귀는 8살 때부터 트인 것이다.


결국 고1 때 난 롯데 파이오니아 전축을 고집을 부려서 어머니에게 선물로 받았고 그 뒤로 공부는 안 하고 음악만 주야장천 들었다. (이쁜 거짓말을 했었다. 전축을 사주면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교 1학년까지 음악에 빠져 살았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를 가려면 이시장을 등지고 언덕으로 올라갔었다.

1949년부터 생겼다는 이시장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추억의 여행이 나에겐 뜻깊었다.

과거에 내가 걸었던, 내가 살았던 곳들을 와 볼 수 있어서 설레었다.

어린 나이의 나를 기억할 수 있었으니까.






하루가 지나

4년 전까지만 해도

연인과 함께 손잡고 다녔던 홍대입구로 왔다.

연남동에, 어쩌면 선생님이 될지 모르는 분을 찾아뵙기 위해서 차를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여유가 많아 홍대입구를 좀 걸었다.

교우 4년 안 왔는데

중고서점도

지하의 서점도 없어졌다.

책장사는 안되나 보다.

슬픈 일이다.

내 아지트 두 곳을 잃었다.

삼성이 광고가 돼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폴바셋이 있었는데 이제는  삼성의 물건들을 파는 건물로 변했고, 1층에 안쪽에 작은 커피숍이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고 목도 타서 아아를 한잔 시켜 앉았다.

20분의 여유도 차분하게 …

붐비지 않고 조용해서 좋았던 곳.

(내가 자주 가던 비싸지 않던 커피숍도 없어지고 그 빌딩조차도 없어지고 새로운 빌딩을 짓는 듯했다.)

카페에 앉아서 겨우 20분의 혼자만의 여유를 가진

이번 여행.




연희동에서 하차를 했고 1-2분 걸었다.

숫자를 공부하시는 선생님댁을 방문을 했다.

언젠가는 같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분이셔서

좋아하시는 커피를 사들고 만나 뵙고 왔다.

서울에 와서 만나고 가는 단 한분.

그리고 차 한잔 얻어 마시고

잠시 담소를 나누고 그곳을 떠났다.

연희동은 고요해서 좋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홍대로 나왔다

버스정류장도 새로 생기고,

단골 카페도, 단골서점들도, 단골문구점도…

코로나가 지나간 4년 동안

많은 것들을 쓸고 갔다.

이 동네에 담아두었던 내 감정들까지…


문득,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고민을 했다.

’ 연락해 볼까…‘

만난 들 그저 반가운 것 말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나는 그냥 길을 건너

2호선 전철역으로 바로 뛰어 내려왔다.

다시 홍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타고

어머니 댁으로 향하고 있다.

지나간 것들은 잊는 것이다.


집에 가서 가방을 싸고, 돌아갈 준비를 하면 된다.


서울이 그리웠고

내 가족과 시간을 보냈고,

가보고 싶던 곳을 적어도 몇 군데 가보았다.


겨우 몇 군대여서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찾지 못했다.




시드니로 돌아가면

다시 냉정한 현실로 돌아가

경제적 독립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정신을 차리고 살아 갈 날들만 남았다.


나는 아직도 창창하고 젊다.

난 무엇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다.


마음이 포지티브로 돌아 섰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나 스스로를 더 온전히 사랑하면서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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