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인데 너까지 이러면 어쪄냐구
하늘에 구멍이 났다.
벌써 3주째 미친 듯이 비만 내린다.
우리 동네는 바다에서 1킬로미터도 안돼서 바람도 오지게 분다.
집 앞 공원에 20미터 나무들에 너무 많아서
밤에는 바람소리에, 무서운 빗소리에
요 며칠 잠이 들기가 어렵다.
이러다가 물이 들이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자연재해는 정말 무섭다.
호주에 살면서 거침없이 다 태우는 산불과 연기에 겁에 질린 적이 있었고, 또 이런 폭우에 무서워 잠을 못 이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폭우에 일이 터졌다.
바깥에 세탁실 하수구가 막혀버린 거다.

하수구 냄새가 나고 물이 넘쳐서 비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엌과 세탁실에 연결이 돼 있는 하수구가 턱 하니 막힌 것이다.
아 미쳐버려
밖에도 비가 내리치는데 세탁실도 물이 넘쳐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도, 세탁을 하다가도 물이 넘쳐버린다.
부엌일도 세탁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삽으로 뭔가 막힌 것을 뚫어보려고 휘저어봐도 뚫리지 않았다.
구정물을 비워내고 휘저어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하수구 냄새에 비는 미친 듯이 오고
와아~~
혼자 사는 1인 가구
난,
슈퍼우먼이던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내야 하는가?
휴가가 정말 이래야 하나?
22년 만에 지내보는 백수생활 한 달
꼭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가?
나 전부 다 잘 해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정말.
우아하게 쉬고 놀고 그러고 싶었단 말이다.
화가 났다.
으아 정말~~~ 하고 하늘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파르르 떨지도 않고 그냥 참았다
우비를 챙겨 입고
하늘에 구멍이 나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를 원망하며 강력 뚫어 뻥을 사 왔다.
내가 일을 지금 안 하고 휴가라 망정이지.
일은 가야 하는데 하수구 막혀서 뭘 못해먹고 빨래도 못했으면 우와 정말 어떻게 했을 거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음 주 까지 내내 비가 온다고 하고 시드니의 집이 2000새대나 잠겨버렸다는데
게다가 우리 동네 호우지역이라고 뉴스에 나오는데
일단 하수구라도 뚫어야지
빨리 뚫어야 한다.
강력 세재 사용방법을 읽어봤다.
친구에게 톡을 했더니
보호 안경과 장갑, 긴소매와 긴바지를 입으라고 그리고 만지라고, 안 그럼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집안에 있는 장비를 다 꺼냈다.
가죽장갑,
N95 mask
긴바지
긴팔 잠바
고글을 끼고
이 독성물질을 그 하수구에 부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물이 빠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구역 플러머를 불렀다.
다행히 와서 보더니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아이패드를 보여주었다.
거의 8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그냥 대충 뚫어만 주면 60만 원
카메라 넣어서 보고 어디가 잘못인지까지 알려주면 80만 원 넘는다고 ㅠㅠ
아
80만 원
80만 원이 누구 애 이름이냐고 ㅠㅠ

너무 비싸서 고치지 못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불러보겠노라고 말하고
대충 본 검사료를 50불을 내고 돌려보냈다.
(야 카메라 넣어봐야 된다는 거는 나도 알겠다, 그거 말해주고 50불 받아가냐 정말)
멀리 한인촌에 사시는 한국인 플러머에게 전화했다.
이분은 얼마나 받으실까 ㅠㅠ
내일 아침에 아주 일찍 오신단다.
자기는 300불부터 차지한단다.
내일 비싸지 않게 한방에 뻥 뚫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제발 이러지 마ㅠㅠ
나 일인가구로 너무 힘들이게 살고 싶지 않다고
나 착하게 살고 있단 말이야.
나에게도 우아함을 누리게 해 줘
이제 비도 좀 그만 오자고
꿉꿉한 날씨는 참을 수 있는데
오래된 집 기와가 새기 시작하면 정말 안된단 말이야
장마~~ 끝!!!!
햇볕은 쨍쨍!!
뚫어 뻥!!!!!
장마 끝, 햇볕 쨍쨍, 뚫어 뻥!!!!!’
다음 날 아침
한국분 플러머가 오셨다.
기적처럼 비도 멈췄다.
기도가 먹혔다. ㅎ
시원하게 뚫어주시고
멀리 하수구도 척 찾아서 정리해주시고
비 안 와서 아이들도 마당 냄새 맡으시고 - 이게 정상이지
그래 다녀 다녀 냄새 맡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 돌려 탈탈 털어서 널었다.
마른 마당이 얼마만이냐
비 안 오는 하늘아 고맙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쉬자.
나 금요일 우아한 런치 먹어야 돼.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