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운명, 그리고 사랑

by Fly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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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긴치마와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다소 우울한 느낌의 그녀가 안쓰러워 이래저래 말동무를 해준 것이 벌써 2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봤자 한두달에 한번 정도의 만남에 밥한끼 먹는 것이 전부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는 내 마음은 답장이 올 때까지 종일 설레임으로 가득찬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오지 말아야할 감정이 오고 말았다. 서른살 즈음으로 운명의 상대가 두 번 나타난다는 속설을 들은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런 온전한 감정이 솟아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모든 세포가 두근거리는 흥분으로 곳곳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더 이상 이 감정을 미뤄둔다면 나는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간다.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쓰기를 누르고 한참을 고민 중이다. 좋아한다고 고백할까 말까. 위험한 도박이였다. 실패하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마음속에서 용솟음쳤다. 그리고 과감히 자판을 쳐내려갔다. 길어선 안된다. 내가 전달하려는 마음이 다른 것들에 가려져서는 안된다. 짧으면서 분명한 내 마음을 그녀에게 전달해야 한다. 생각외로 글은 막힘없이 마침표를 누를 때까지 채워져나갔다. 고민은 이미 충분히 해버린터였다. 뒤돌아보지 않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구석을 맴돌며 긴 한숨을 쉰다. 그래. 저질러 버린 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하늘만이 아는 것이다. 그녀가 내 운명이라면 이것은 인연의 시작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뭐 쿨하게 마는거지. 그녀를 잃는 것은 아쉽겠지만 그래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TV나 드라마 같은데 보면 그렇다고들 하잖아. 그래. 괜찮아. 쫄지말자. 쫄필요없다. 그런데도 고작 몇줄의 문장으로인해 쿵쾅대는 심장은 당최 진정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뒤 기다리던 그녀의 답장이 왔다. 며칠의 시간동안 어느 새 자라버린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들이 미친 듯이 광합성을 하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이성이 외치는 메아리의 울림이 나로 하여금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붙잡게 해 주었다. 화면의 포인터는 “RE:...”라고 쓰여진 링크 위에 올라가 있었고 뇌를 통해 전기적 신호를 받은 두 번째 손가락은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르기 위해 근육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이 바뀌고 그녀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진 문장이 화면에 펼쳐졌다. 드디어 만나게된 진실. 내 마음에 대한 그녀의 답. 그것을 보는 내 눈과 이를 해석하는 나의 뇌세포들. 적혀진 글씨들이 주는 정보에 따라 세포들은 부지런히 각자의 위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감정은 다시금 폭풍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요동친 감정은 글을 쓰기 전에 생각했던 예상된 리스크를 훨씬 뛰어넘었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은 감정이 현관문을 열고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가게끔 만들었다.


그날 나는 2년가까이 알아온 그녀를 잃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 확실했던 사실은 그녀가 서른 즈음에 찾아오게 된다는 두 번의 운명의 상대중 한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드니 후회는 남지 않았다. 아니다. 그건 그냥 상처를 인정하기 싫은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열지 말았어야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리스크는 생각외로 컸다. 그것을 치료하는 유일한 백신인 시간은 너무도 더디게 흘러갔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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