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작은 것들이 몽글몽글 기억난다. 85년생인 나는 소띠여서 그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니 더 기억나는 팔팔이의 모습이 있다. 추위를 유난히도 많이 타던 그는 목욕이라도 한날에는 겨울이 아니어도 오들오들 떨곤 했다. 그런 모습들이 지금 생각하면 그립고, 또 그립다. 자주는 아니어도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면 좋아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자주 함께 해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2008년 여름에 나는 군대에 있었다. 24살이라는 조금은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했던 나는 이루지 못했던 꿈들에 대한 미련과, 대학 시절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등으로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부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기회로 그 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였지만,,
그런 와중에 팔팔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린 강아지는 새싹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 건강하고 식욕이 좋고, 꼬리를 흔든다. 그 사랑스러움은 내가 아직은 가지지 못한 아이의 그것과도 같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8년의 여름, 내가 배치받은 부대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금부터 17년 전, 10여 년 정도 자주 보지 못하였던 할머니의 죽음은 , 그리고 나의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맞는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조금은 다른 느낌의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왜 자주 돌보지 못했는지, 함께 찾아가 보자던 아버지의 의견을 듣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그 해의 8월은 지나가고 있었다.
강한 생명력으로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던 팔팔이, 그리고 그 해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삶이란 가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나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처음으로 팔팔이는 다른 집에 잠깐 갔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하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맡겨짐 없이 우리 가족 속에서만 살았던 팔팔이는 사회성이 결여된 아이였다. 온실 속의 화초일지, 아니면 요즘 말하는 금쪽이 일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하나 비슷한 건 자유롭고 자기 취향이 강한 건 나의 그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2008년의 여름은 할머니의 장례식, 그리고 나의 입대와 함께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팔팔이는 경기도 동두천에서의 군 생활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외박을 나오거나, 휴가를 받아서 집에 가면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내가 밖에서 놀다가 늦게 들어와도 잠을 함께 했다. 물론 잠시 있다가 엄마에게 가버리는 루틴이었지만,,
2025년의 겨울을 보내는 나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그가 없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보내었다. 벚꽃길을 걷지도 못했고, 학교 옆 푸른 산을 걷지도 못했던 올 해의 지난 계절들이 서러웁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또 이처럼 힘든 이별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사람들의 삶은 나의 삶처럼 유한하다. 그들과 더 행복한 추억을 나누고 연락을 나누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