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공중파 갈 목소리가 아니야
결국 나는 견딜 수 없는 대구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엄마에게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만큼이나 단호했다. 회복될 때까지는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내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단식투쟁을 했다. 나는 참 철없는 딸이었다.
처음엔 “네가 아프지, 내가 아프냐?” 했던 엄마는 이틀이나 밥을 거르자 결국 항복했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는 나를 보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답답해하고, 눈물을 보였지만 나는 지금의 건강이나 안녕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이렇게 살아서 안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지 모른다. 문명의 맛을 한 번 본 원주민들이 다시 자신의 부족에서 살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엄마로부터 하루 3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겠다는 서약서를 쓴 후에야 비로소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엄마는 동생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세끼를 꼭 챙겨주고 먹지 않으면 바로 연락을 하라고 했다. 동생은 알겠다고 했다. 동생과 엄마는 한 편이 되어 나를 살찌우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동생의 퉁퉁한 얼굴과 발목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엄마는 만약 중간에 검사를 받으러 왔을 때 경과가 나빠져 있으면 다시 내려오기로 약속했다. 병원에 있었던 시간들은 말 그대로 내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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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학원을 다시 등록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아카데미의 복도에는 여전히 액자들이 일렬로 줄지어져 있었다. 처음 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와 마음이 같을 수는 없었다. 좀 오래 쉬었다는 생각과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몸이 걱정이었다.
원장선생님께서 반겨주셨다.
“재연아, 몸은 다 나았니? 아직 혈색이 좋지는 않네.”
원장선생님은 내가 가장 믿고 따르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연세는 60세를 바라보지만 트렌드를 보는 눈과 아나운싱의 정석을 가르치는 노련함은 존경스러웠다. 많은 학생들이 매의 눈인 원장선생님을 두려워했지만 나는 원장선생님에게서 아빠를 느꼈다. 나에게 아빠는 강하고도 나를 감싸주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다시 아카데미 등록하고 열심히하려구요.”
“그래, 잘 생각했어. 열심히 해야지.”
병원에 내려가기 전 들었던 중급반으로 다시 등록했다. 여기서부터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음식 먹는 양은 기본은 지키고 스트레칭과 요가의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에 방문한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 허벅지와 종아리에 알이 심해서 옷태가 안 난다며 운동을 자제하고 스트레칭만 열심히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23이니까, 나이를 믿자.’ 되뇌던 나의 생각은 아카데미의 아이들을 보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몇 명은 익숙했지만 새로 들어온 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예쁘고 늘씬했다.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저들보다 더 뛰어날 것 없는 외모에 회복하느라 너무 잘 먹어서인지 변한 것 없는 나의 몸이 불만스러웠다. 동생이 매번 차려주는 식탁의 아침상을 남겨두고 문을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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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 TV를 켰다. 그날따라 아나운서들의 외모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동그란 눈과 오똑한 코, 날렵한 입매. 그 모든 이목구비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지적인 이미지에 정돈된 목소리가 완벽함을 이루었다. 뉴스룸 의자에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저기에 앉기에 나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에 크게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덜 빠진 붓기에 아파서 홀쭉하게 꺼져있는 볼과 까매진 얼굴이 보였다. 허벅지 뒤쪽을 만져보았다. 아플 때는 다 사라졌던 허벅지 뒤쪽 살이 만져졌다. 어떻게 빠진 살인데, 이 살을 뺀 후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한 내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들은 허벅지 군살 하나 없는 모습인데 말이다. 단적인 비교란 이런 것이다. 내가 고용주라면 나라도 나보다 아까 학원의 그 아이들을 뽑을 것이다. 기 넘치는 붉은 볼을 가진 늘씬하고 예쁜 아이들. 내가 시청자라도 나보다는 그들을 원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보다 예쁘지 않다. 내가 제일 예쁘고, 내가 제일 똑똑해야만 이길 수 있다. 거울 더욱 바라보며 눈이 조금만 더 커지고 시원스러우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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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나자마자 리포팅 연습을 하고 신문을 읽은 뒤 성형외과로 향했다. 양악 수술을 했던 병원이었다. 사후관리 프로그램이 잘된 병원이어서 서비스로 아큐스컬프도 받았다. 아큐스컬프는 귀 뒤로 캐뉼러를 넣어 볼과 광대뼈 쪽의 지방층을 제거해 더 작은 얼굴을 만들 수 있는 시술이었다. 양악 수술로 턱 쪽은 가늘어졌지만 아직도 옆 광대뼈 쪽은 조금 불거져 나와 촌스러움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양악수술의 경과를 확인하러 온 의사에게 넌지시 내 눈이 더 커지고 예뻐질 수 있을지 물었다.
의사에게 눈매교정을 다시 상담 받았고 의사는 하면 더 예뻐질 것이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의사의 대답과 상관없이 나는 눈 재수술 비용과 종아리 보톡스로 알을 줄이는 것에 대한 비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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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장 원장 선생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원장 선생님께 눈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동안 원장 선생님이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실 줄 알았는데 침묵으로 지켜보는 원장 선생님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내게 나가와 쇼파에 나를 앉혔다.
“솔직히 말할게. 재연아. 이건 아카데미 원장으로써가 아니라 너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말할게.”
나는 긴장했다. 침이 나도 모르게 꿀꺽 넘어갔고 원장님의 단호한 눈을 피하려고 애썼다. 잠시 뜸을 들이던 원장님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네가 쌍꺼풀 수술을 다시 한다 해도 공중파를 갈 얼굴과 목소리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