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나운서

죽음의 냄새

병 앞에서

by Sia

다시 내가 죽음 앞에 서있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 옆에서 잠이 들었다. 엄마는 양악수술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언젠가는 말을 꺼낼 것 같아 조마조마 했지만 엄마는 성형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 왜 이렇게 멋대로 구냐며 날 한 대만 쥐어박아줬으면 마음이 이것보다는 덜 불편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내가 위암일수도 있다고 했다. 개복수술을 해서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해 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몇 달 만에 또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암 일수도 있다는 소리에 한 동안 말을 잃었다. 나 역시 믿지도 않던 신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암’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

병원에서의 시간은 엄마와 동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엄마는 내 병간호를 위해 동생을 내려오게 했고 동생은 의외로 군말 없이 내려왔다.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내 손을 잡고 잠이 든 엄마를 볼 때나, 열이 날 때 묵묵히 나를 닦아주는 동생을 볼 때 새삼 나는 나를 태어나게 한 엄마와 가족을 느꼈다. 엄마의 뱃속에서 느껴졌던 따뜻함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아프면서 많이 느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엄마에게 나는 지금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동생의 묵묵한 간호에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불쾌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언니. 동생의 통통한 손가락을 조물거렸다. 뚱뚱하다고 싫어했던 등이 폭신한 솜 인형같았고, 굵은 발목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힘의 원천인 것 같았다. 점점 가족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진작 더 사랑할걸, 동생이 주는 레몬타르트를 먹고 맛있다고 해줄걸‘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이제한 때문에 어떤 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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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근처 학생들이 병원으로 위문공연을 왔다며 엄마가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위문공연을 보기 싫었다. 이 병원에 있으면 정상인이라곤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몇몇의 간병인밖에 없다. 그 외의 인간들, 즐겁게 생활하고 그러다 시간을 내서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러 오는 멀쩡한 사람들을 본다는 게 편하지가 않았다.

내가 있었던 곳은 암 병동이어서 노인이 많았는데 그들에게서 나는‘세포가 죽는 냄새’를 맡았다. 아파서 감각이 예민해진 상황이어서 나는 냄새에 민감해져있었다. 노인들에게서나는 죽어가는 세포의 냄새는 역했고 나는 그게 내 몸에서 나는 건 아닌지 킁킁거리며 맡아보곤 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냐며 맡아보라고 팔을 내밀어 보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가 열이 많이 날 때면 가까이 다가오는 엄마의 입에서 심한 입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게 엄마가 스트레스로 간이 타들어가는 냄새라고 느꼈다. 순대가게에서 맡았던 간의 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모든 일들이 거슬리고 힘든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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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수술 끝에 밝혀진 병명은 위 결핵이었다. 결핵은 3세계 국가에서나 생기는 병인 줄 알았더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영양이 불균형한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엄마는 위암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다이어트를 했을 뿐이고 누구나 다 하는 다이어트에 왜 나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인정하기 힘들었다. 위 결핵은 6개월 간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한 2개월은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엄마가 차려주는 균형 잡힌 식사를 했다. 나도 빨리 나아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몸이 회복될수록 빠졌던 체중이 돌아오는 것도, 지방에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TV를 켤 때마다 나오는 아나운서들의 모습이었다. 마르고 예쁜데도 건강한 모습으로 리포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와 너무 먼 거리에 있다는 생각에 몸이 오슬오슬 떨리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었던 꿈이었는데 어느새 절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뉴스로 내 오랜 꿈을 지켜봐야 하다니.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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